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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샤오강 “내겐 하루하루가 월요일...쉼 없이 작업하는 삶 감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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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장샤오강은 ’작품에 담고 싶은 것은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미래로 나가야 하는가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장샤오강은 ’작품에 담고 싶은 것은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미래로 나가야 하는가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나는 주말 없이 작업한다.  내겐 하루하루가 월요일이다.”

어쩌면 이리도 한결같을까. 5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예나 지금이나 내가 서 있는 자리는 그저 작업실일 뿐”이라고 했던 중국의 스타 작가 장샤오강(61·張曉剛)은 지난 4일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국 현대미술 붐을 일으킨 화가, 2011년 홍콩 소더비 경매에서 작품가 110억원(‘영원한 사랑’)을 기록하고 이후 자신의 최고가 기록을 다시 깨뜨린 작가의 얘기치고는 너무도 담담했다.

중국 현대미술 대표 작가 #공공미술 프로젝트 ‘스테이션’ 참여 #한·일 작가와 협업으로 작품 완성 #사진·동영상 활용 ‘기억’ 주제 다뤄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기자와 마주 앉아 “나는 쉬는 날이 거의 없이 작업에 매달리고 있다”고 말한 그는 “베이징의 작업실을 떠나 있는 지금이 내겐 주말 같은 시간이다. 예나 지금이나 작가로서 내 일상은 달라진 게 없다”고 말했다.

장샤오강이 최근 한국을 찾았다. 서울 상암동 중앙그룹 신사옥의 공공 미술 프로젝트 ‘스테이션(Station)’ 설치를 위해서다. ‘스테이션’은 동북아시아의 화합이라는 기치 아래 한국·중국·일본의 현대 작가들이 함께 참여한 프로젝트. 한국의 문경원·전준호(큐레이터 서진석), 일본의 야나기 유키노리(큐레이터 구보타 켄지), 중국 큐레이터 렁린과 함께 최근 작품을 완성했다.

이번 프로젝트에서 그가 보여준 작품은 의외다. 그의 대표작인 '대가족' 같은 회화는 거기 없다. 대신 그는 벽면에 거대한 규모의 조형물을 설치했다. 콘크리트로 만든 서랍 모양 조형물에 한·중·일 어린이들의 사진을 소재로 작업한 동영상을 삽입했다. 이 조형물은 유키노리 작가가 설치한 공 모양의 미디어 설치물, 문경원·전준호 작가의 조명·사운드와 공명하며 하나의 작품이 됐다.

그가 제작한 서랍 조형물은 보는 이의 생각을 자극한다. 열린 서랍은 금방이라도 많은 이야기를 쏟아낼 태세이고, 닫힌 서랍들은 닫혀 있는 대로 '아직 다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간직한 것처럼 보인다. 무표정의 가족 구성원을 그린 '혈연:대가족'연작으로 현대 중국의 초상화를 그렸던 그는 지금 '서랍'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세계적으로 성공한 작가로서 그의 삶은 어떻게 변화했을까.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봤다.

회화 넘어서 조각·설치·동영상까지  

공공미술 프로젝트 스테이션 앞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장샤오강. [사진 리미디어랩]

공공미술 프로젝트 스테이션 앞에서 작품을 바라보는 장샤오강. [사진 리미디어랩]

이번 작품은 회화가 아니더라. 사진·동영상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했는데.
“10년 전부터 이미 회화 이외의 작품들도 해왔다. 내 작업을 굳이 ‘회화’라는 틀에 가두고 싶지 않다. 여전히 내 작품은 그림 위주이지만, 주제에 따라서 다양한 표현 방법을 쓰고 있다. 화가를 넘어서 예술가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스마트폰을 쓰는 시간이 늘어나 촬영도 하기 시작했는데,  이번 작품은 몇백장의 사진을 고른 후 그것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해 만들었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동기는.
“다른 나라 작가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라는 점에 끌렸다. 다른 작가들과의 협업은 처음 해보는 것이라서 내겐 큰 도전이었다.”

그는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땐 걱정도 됐다. 작가들이 모두 개성이 강하고 언어도 다른데, 함께 한 공간에 작품이 놓이면 잘 어울릴까 싶었다"면서  "하지만 전시장에서 직접 보고 마음이 놓였다. 세 작가의 뜻이 하나가 돼 잘 조화를 잘 이룬 것 같다"고 덧붙였다.

‘스테이션(역)’이라는 주제가 독특하다.
“다른 작가·큐레이터들과 워크숍 하며 정한 주제다. 역은 출발하고, 도착하는 장소 아닌가. 젊었을 때 바깥세상과 미래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방 메고 여행을 떠날 때의 감정도 되살아났다. 또 한편으로 역은 역사의 목격자처럼 지나온 길을 생각하게 한다. ‘역’은 지나온 길을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공간인 동시에 미래를 향한 출발점이다. 매우 맘에 드는 주제다.”

그는 “그동안 내가 작품에 담고 싶었던 것도 과거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미래로 나가야 하는가의 이야기였다”면서 “과거를 마주하는 느낌을 주기 위해 ‘시간의 서랍’이라고 생각하며 작업했다. 동시에 어린이들의 얼굴을 통해 미래를 동시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그럼 과거와 미래를 함께 담은 작품으로 보면 될까.
"사실 더 큰 비중을 둔 것은 과거를 마주하는 것이다,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미래의 희망에 대한 갈망을 담았다. 한·중·일 3국은 과거에 모두 힘든 시간을 겪었다. 이런 역사를 마주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얘기를 담고 싶었다. "

 '기억'을 탐구하다 

장샤오강은 1958년에 태어나 중국 서부 쓰촨성에서 자랐다. 문화혁명이 시작된 66년 당시 여덟 살이었던 그는 이후 10년간 중국에서 벌어진 정치·사회적 격변을 지켜봤다. 2005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문화혁명 당시) 거의 매일 밤 사람들이 우리 집에 와서 부모님에게 뭘 잘못했는지 자백하라고 했다”고 말한 바 있다.

그의  ‘혈연: 대가족’ 시리즈는 1992년 처음으로 석 달간 유럽 여행을 하며 미술관을 돌았던 그가 중국으로 돌아오며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며 탄생했다. 귀국길 쿤밍의 고향 집에서 부모님의 낡은 앨범을 들춰보던 그는 오래된 가족사진에서 개인은 없고 집단만이 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그때의 감정을 담기 시작했다.

'기억'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면서도 회화를 넘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장샤오강. [사진 리미디어 랩]

'기억'이라는 주제에 집중하면서도 회화를 넘어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는 장샤오강. [사진 리미디어 랩]

당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 중 하나가 ‘기억’인 것 같다.
“나는 사람의 본질, 근본적인 부분에 주목하는데 그 점에서 역사와 기억이라는 것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주제였다. 나는 내게 벌어진 일, 우리 가족이 겪은 일을 그렸을 뿐이다.”
왜 기억이 중요한가.
“만약 변화가 없는 삶이라면 나는 ‘기억’이 갖는 의미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오늘의 감정이다. 내가 기억에 집중하는 이유는 과거를 복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빠른 변화의 과정을 탐구하기 위해서다. 우리의 마음속에 잊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그 시간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겨 주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내게 창작은 숙명 같은 것"  

지난 30여년간 사회가 크게 변화했다. 작가로서 고민하는 내용도 변화했나.
“예술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생활인 점에선 변한 것은 없다. 어려운 시기엔 그림을 그릴 수 있어서 그 힘으로 버텼는데, 나이 들어보니 이제 내게 창작은 숙명 같다. 이 길이 순탄하진 않아도 예술을 하는 길을 선택한 것 자체가 내겐 큰 기쁨이었다.”
2011년 작품 가격이 110억원을 넘었다. 성공한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작품 가격이 오른 것이 내게 큰 변화를 준 것은 사실이다. 생활, 친구, 환경 등이 크게 바뀌었다. 그러나 변화는 잠깐이다. 창작하는 내 생활은 매일 밥 먹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대로다.”
요즘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
"지난해부터 캔버스에 여러 종류의 종이를 조합해서 하나의 작품을 만드는 작업(拼贴画)을 하고 있다. 지난해에 한 전시에서 공개했는데 호응이 무척 좋았다. 앞으로 내가 계속 디지털 관련된 작품 활동을 할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내일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집중하는 것은 오늘의 일이다. "
오늘이 무척 중요하다고 했는데 작업은 규칙적으로 하나.
"내겐 주말이 없다. 하루하루가 월요일이다. 거의 쉬는 날이 없다. 매일 오전 늦게 일어나서 늦게 점심을 먹고 커피와 함께 작업을 시작해 밤 12시, 새벽 1시 등 밤늦게까지 작업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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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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