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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막내리기 전 꼭 챙겨봐라···구본창 사진전 '인코그니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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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 Japan, 2019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Tokyo, Japan, 2019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Lima, Peru, 2016.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Lima, Peru, 2016.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사진 작품 좀 본다'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이 전시를 챙겨봤다. 서울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린 구본창 (66) 작가의 개인전 '인코그니토(Incognito·'익명의')'. 3개월 대장정에 올랐던 전시는 이제 11일 폐막을 앞두고 있다. 기나긴 전시 기간을 믿고 '봐야지, 봐야지'하며 전시장 외출을 미뤄온 사람들도 이젠 서둘러야 할 시간이다. 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 구본창의 다른 면모를 확인할 기회, 그냥 놓쳐버리기엔 너무 아깝다.

사진 덕후들이 알아야 할 한국 현대사진 대표작가 #신작과 더불어 80-90 '긴 오후의 미행' 연작 소개

구본창 하면 많은 사람은 제일 먼저 '백자' 연작을 떠올린다. 작가가 2004년부터 세계 주요 박물관을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 '백자' 연작은 2006년, 2011년 국제갤러리 개인전 이후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마치 인물 사진을 찍듯 촬영한 그의 백자 사진은 마치 초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자기 특유의 광택을 없애고 우윳빛 달항아리에 새겨진 미세한 흔적들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기법으로 절제된 아름다움을 극대화해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가가 매일 세수하고 손 씻으며 쓰다 남은 비누를 수집하고 이를 촬영한 '비누' 연작을 사랑하는 이들도 적잖다. 닳고, 작아지고, 부서진 비누를 마치 자갈 이미지로 표현한 비누 연작은 우리를 둘러싼 공간과 사물을 통해 시간의 흔적을 탐구해온 작가의 섬세한 시선을 보여줬다.

하지만 이번 전시엔 사람들이 흔히 기대할 법한 백자 사진은 걸려 있지 않다. 비누 사진도 없다. 그래서 오히려 더 특별하다. 한미사진미술관은 작가의 신작과 근작을 소개하는 '인코그니토'와 더불어 1985~90년 서울 길거리 기행의 산물인 ‘긴 오후의 미행’ 연작 회고전을 통해 작가를 좀 더 폭넓게 재조명한다.

이번 전시에서 만나게 되는 것은 소소한 사건들이 일어나는 도시의 일상 풍경, 너무도 여기저기 널린 것이어서 오히려 대부분의 사람은 그 존재조차도 알아채지 못하고 지나친 낡고 허름한 삶의 흔적들이다. 작가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디서 시작됐고, 또 어떻게 확장되고 깊어졌는지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자리다.

생명력의 원천, 물  

Seongnam, South Korea. 2019.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Seongnam, South Korea. 2019.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이번 전시작 중에서도 관람객의 시선을 가장 강렬하게 붙드는 작품 중 하나는 마치 잭슨 폴락의 추상화를 연상케 하는 대형 흑백 사진이다. 하얀 화면에 먹물과 기름이 뒤섞여 있는 듯한 형상이 강력한 에너지를 뿜어낸다. 막상 작품 앞에 서면 무엇을 찍은 것인지 한눈에 가늠하기 쉽지 않다.

경기도 성남시장에서 수조 안에서 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포착한 것이다. 물, 빛과 어둠, 거품, 그리고 미끌미끌한 생물체의 표피가 리드미컬하게 물결을 이루며 하나가 돼 일렁이는 장면은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평소에 물이 지구의 자궁, 생명의 원천이라고 생각해 왔다"는 작가는 이미 제주도와 동해, 그리고 일본의 바다를 찾아다니며 물을 소재로 한 작품을 찍은 바 있다. 하지만 이번에 그가 보여주는 작품은 바다가 아니라 도시 시장 안 수조 안의 미꾸라지임에도 역동적인 박동이 화면 밖으로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하다.

구본창, 시간의 흔적을 좇는 작가 

Jejudo, South Korea, 1999/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Jejudo, South Korea, 1999/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Kuri, South Korea, 1995.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Kuri, South Korea, 1995.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대상의 본질에 있는 빛을 가장 잘 끌어낸다는 평가를 받는 구본창의 힘은 거의 모든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모래 더미에서 그는 바람의 흔적을 읽고, 도시에 흔한 낡은 벽과 문, 심지어 길바닥에 난 발자국을 통해 끊임없이 우리를 지배하는 시간의 힘을 상기시킨다.

그가 페루 리마의 건물 철거 현장에서 촬영한 사진도 강렬하다. 한때는 많은 이들에게 보호하고 감싸줬을 건물이 이제는 실처럼 너덜너덜해진 철근을 앙상하게 드러낸 순간을 그는 놓치지 않았다. 얽히고설킨 철근에 대롱대롱 매달린 콘크리트 덩이들이 마치 솜처럼 가벼워 보인다. "삶의 덧없음을 포용하며 사랑과 죽음의 모든 국면을 다루는" 작가의 단단한 내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Lima, Peru, 2017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Lima, Peru, 2017 [사진 구본창 KOO Bohnchang ]

물성(物性)과 시간의 만남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그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바로 대상의 물성 자체에 집중한 작가의 탐구 정신이다. 그의 작품에선 물과 돌, 콘크리트, 종이와 유리 등 흔한 재료들이 강력한 존재감을 뿜어낸다. 그것도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이 아니라 이제는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을 정도로 바래고 뭉그러지고 사라지기 일보 직전의 모습으로.

작가가 집요하게 포착한 대상들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그것들의 다양한 질감, 그 자체가 메시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우리 주변에서 '앞으로 존재하지 않을 것들'을 끊임없이 들춰내고 상기시키며 시간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셈이다.

손영주 한미사진미술관 학예실장은 "구 작가는 1980년대부터 도시 곳곳을 누비며 혼란스러우면서도 쓸쓸한 도시 얼굴을 렌즈에 담아왔다"며 "그는 도시의 기호를 발견하고 수집하는 사람이다. 그 안에 그가 마주한 시대와 자아에 대한 성찰이 그대로 녹아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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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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