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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국무부, 문 대통령 남북 구상 제동…“대북 제재 이행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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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한·미가 새해 벽두부터 남북 협력사업을 놓고 엇박자를 노출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기존 방침 그대로 대북제재 유지에 방점을 찍으며 속도 조절을 기대했지만 정부는 9일 남북 협력사업의 속도를 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제재 상황에서도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며 “구체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김 장관은 “제재가 해제돼야 (교류협력이) 가능한 분야가 있고, 제재 상황에서도 할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에 #우회적으로 반대 입장 내비쳐 #김연철 “남북이 할 수 있는건 해야 #철도·도로 연결 정밀조사 준비”

김 장관은 남북 철도·도로 연결 사업에 대해선 “우선적으로 1차 조사에 이어 정밀조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유엔 대북제재위원회의 면제 절차를 밟으면 가능하다는 입장도 피력했다. 통일부 당국자도 기자들과 만나 각종 교류협력 사업에 대해 “북측 호응에 따라 구체적으로 현실화할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당국 간 회담 제안을 종합적으로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남북관계 구상에 대해 이날까지 미국이 보여준 태도는 사무적이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8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구상에 찬성하느냐’는 미국의소리(VOA) 방송의 질의에 “모든 유엔 회원국들은 안보리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하며 우리는 모든 나라가 그렇게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답했다.

문 대통령은 앞서 지난 7일 신년사에 밝혔던 남북 교류협력 확대 구상을 발표했는데 이에 대해 명시적으로 찬반 입장을 밝히지는 않으면서도 우회적으로 ‘제재 유지’를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관계자는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가 비핵화를 촉진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느냐’는 VOA 질의에도 “미국과 한국은 북한 관련 노력에 긴밀히 협력하고 유엔 제재들이 완전히 이행되도록 공조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이를 놓고 정부에 ‘속도 조절’을 주문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앞서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도 문 대통령의 신년사 뒤 가진 언론 인터뷰에서 “우리는 남북관계의 성공이나 진전과 더불어 비핵화를 향한 진전을 보기 원한다. 그것이 중요한 조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금강산관광 사업을 놓곤 묘안을 고심 중이다. 문 대통령은 과거에도 청와대 참모진과의 회의 석상에서 “개별관광은 대북제재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김정은 위원장도 알고 북한도 알고 있으니, 우리가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취지로 지시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선 당장 중국을 통하거나 동해선 도로를 따라 자동차로 북한에 들어가는 방안 등이 아이디어 수준으로 제안됐다고 한다. 통일부는 김 위원장이 지난해 금강산 남측시설 철거를 지시한 이후 남북연락사무소를 통해 금강산 개별관광 등에서 ‘창의적 해법’을 논의하자는 입장을 지속해서 알렸다고 한다. 하지만 북한은 현재까지 당국 간 만남을 거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정부까지 긍정적 반응을 내놓지 않으면서 남북 교류협력 확대는 한·미 간 조율이라는 숙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하는 국면을 맞고 있다. 예컨대 북한 관광의 경우 유엔 안보리의 명시적인 제재 대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개인·기업을 제재할 수 있도록 한 미국의 행정명령 13810호에 해당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백민정·위문희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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