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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 공략 아예 어려워지나"…이란 사태에 고민에 빠진 기업들

중앙일보

입력

 #. KT&G가 2008년 이란 테헤란에 세운 이란 법인(KT&G Pars)은 사실상 철수한 상태다. 이미 지난해 3분기 이 회사 경영위원회에서 청산을 의결했다. KT&G가 현지 법인을 설립한 건 2008년. 중동의 중심인 이란에서 성공하면 주변 지역으로 진출하는 것도 수월할 것이란 기대에서였다. ‘에쎄’와 ‘파인’ 등 연간 5억 개비 규모의 생산 기반도 갖추고 한때 이란 담배 시장에서 10% 내외의 점유율을 기록하며 JTI와 BAT에 이어 3위 사업자로 올라선 적도 있다.

하지만 이젠 모두 과거가 됐다. 미국의 제재 등이 이어지면서 2013년 이후 시장 상황이 계속 출렁였기 때문이다. KT&G 관계자는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 강화에 따라 원ㆍ부자재 운송로 및 외화 송금을 위한 루트가 차단돼 정상적인 사업이 불가능해졌다”며 “현재는 생산 시설 철수 관련한 현지 절차 등을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반미 시위 중인 이란 여성들. 오른쪽 여성이 들고 있는 액자 속 인물은 최근 미군의 공습으로 숨진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 [로이터=연합뉴스]

반미 시위 중인 이란 여성들. 오른쪽 여성이 들고 있는 액자 속 인물은 최근 미군의 공습으로 숨진 거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이란혁명수비대 정예군) 사령관. [로이터=연합뉴스]

미국-이란 간 갈등이 고조되면서 이란·이라크 등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미국의 경제 제재로 비즈니스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는 것은 물론 인적ㆍ물적 피해까지 발생할 우려가 있어서다.

9일 재계와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이하 코트라)에 따르면 현재 이란에 진출해 있는 기업은 삼성전자와 LG전자 등이다. 대부분 현지에 지사를 두고 있지만, 인근 두바이 등과 비교해 규모가 크지는 않다. 이마저도 지난해 미국의 이란 경제 제재가 본격화되면서 대부분 철수한 상태다. 1991년 이란 지사를 설립한 코오롱글로벌은 한국인 직원은 인근 두바이에서 근무하는 식으로 지사를 운영한다. 코오롱그룹 관계자는 “이란과 이라크 지사가 있지만, 수출 규모가 크지 않고 직원은 두바이에 있어 현재 안전 문제는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란 현지에 문을 연 국산 편의점 브랜드 CU. 현재는 모두 철수했다. [중앙포토]

이란 현지에 문을 연 국산 편의점 브랜드 CU. 현재는 모두 철수했다. [중앙포토]

이란·이라크를 발판 삼아 중동 지역으로 진출 시장을 넓히려는 시도 역시 움츠러드는 모양새다. 편의점 브랜드 CU를 수출한 BGF리테일이 대표적이다. BGF리테일은 2017년 이란 현지 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현지 매장 수를 9개까지 늘렸다가 현재는 이란에서 완전히 철수했다. 이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 제재 국면이 본격화되면서 (현지 진출을 위한) 프랜차이즈 계약이 사실상 끝났다"며 "브랜드 수출이었던 만큼 현재 이란 현지에 있는 직원은 없다"고 전했다. 현대건설 역시 지난 2017년 현대엔지니어링과 함께 이란 투자펀드인 아흐다프(AHDAF)가 발주한 32억 달러(약 3조7200억원)짜리 공사를 공동 수주했지만, 경제 제재 등으로 인해 공사 계약을 해지한 바 있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사진 한화건설]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내 놀이터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다. [사진 한화건설]

"완전 철수는 아직 아니다"
불안하지만 이란ㆍ이라크 지역에서 계속 사업을 이어가는 기업도 있다. ‘이라크의 분당’이라 불리는 비스마야 지역에서 대규모 아파트 단지를 짓고 있는 한화건설이 대표적이다. 코트라 이란 무역관 역시 현재로썬 현지 무역관을 계속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코트라 관계자는 “무역관이 대사관 산하로 편재돼 있어 대사관이 철수하면 함께 철수할 예정이지만, 아직 그런 상황을 고려할 단계는 아닌 것 같다”고 전했다.

당장 큰 피해는 없어도 환율이나 국제 유가 등 거시 환경이 요동치고,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는 건 대부분의 기업에 부담이다. 중동에서 원유를 들여와야 하는 정유 업체나, 글로벌 경기 회복을 기대하는 조선 업체들이 특히 그렇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현재 이란·이라크로부터 들여오는 원유는 없지만, 이 지역 정세에 따라 국제 유가가 끊임없이 출렁이는 건 사실”이라며 “이번 사태가 국제 유가 전반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 중”이라고 말했다.

이수기ㆍ강기헌 기자 lee.soo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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