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천 미쓰비시 줄사택 “흉물 철거해야” “근대 문화재 보존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미쓰비시 줄사택(왼쪽 사진)은 1938년 일본 군수공장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이 살던 합숙소다. 건물이 줄지어 붙어있어 줄사택이라 불렸다. [사진 부평구청]

미쓰비시 줄사택(왼쪽 사진)은 1938년 일본 군수공장에 강제 징용된 노동자들이 살던 합숙소다. 건물이 줄지어 붙어있어 줄사택이라 불렸다. [사진 부평구청]

경기도 수원시 고색동에는 아파트 10층 높이(25m)의 기다란 굴뚝이 하나 솟아있다. 1960년대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벽돌공장 ‘영신연와(永新煉瓦)’다. 공장은 1980년대 문을 닫았지만, 벽돌을 굽던 가마터와 야적장, 창고, 노동자 숙소 등 옛 모습은 그대로 남아있다. 주민들은 이곳이 “수원에 남은 유일한 초기 산업 건축물”이라고 말한다.

1938년 지어진 강제 노동자 숙소 #남은 6채 중 4채는 철거될 예정 #신일철공소·이애숙 가옥 등 헐려 #시민단체 “지자체가 관리 나서야”

하지만 영신연와는 철거될 위기다. 이 일대에서 고색지구 도시개발 사업이 추진되면서부터다. 수원시 관계자는 “영신연와를 놔두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개발을 추진하는 조합에서 미관을 해치거나 개발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어 고민”이라면서 “보존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많아 기록화 작업 등 대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1960년대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벽돌공장 영신연와는 1980년대 문을 닫았지만, 공장 터 등은 남아있다. 최모란 기자

1960년대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벽돌공장 영신연와는 1980년대 문을 닫았지만, 공장 터 등은 남아있다. 최모란 기자

이런 취급을 받고 있는 근현대 건축물은 영신연와만이 아니다. ‘오래되고 낡았다’는 인식과 ‘역사적 의미가 있으니 보존해야 한다’는 의견도 부딪쳐 곳곳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인천시 부평동에 있는 미쓰비시(三菱) 줄사택이 대표적이다. 1938년 히로나카상공(弘中商工)이 노동자 숙소로 만들었고, 1942년 미쓰비시 제강이 인수했다. 사택이 줄지어 있다고 해서 줄사택이라 불렸다. 이후 차례로 철거돼 현재는 6채가 남았다. 주민들은 흉물이라며 철거를 요구하지만, 학계에선 일제 강제노역의 흔적을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결국 부평구는 4채는 철거하고 나머지 두 채는 활용방안을 찾고 있다. 철거되는 사택 일부 동을 실측 조사한 뒤 기록화 보고서를 남겨 다른 장소에서 복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미 사라진 건축물도 부지기수다.

지난해 5월에는 경남 창원시에서 1938년에 건립된 일본식 집인 ‘이애숙 가옥’이 헐렸다. 그 자리에는 5층 상가 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해 11월에는 1974년부터 목선 건조와 수리에 쓰는 철제 못 등을 만들던 대장간인 신일철공소가 철거됐다.

근현대 건축물이 사라지는 이유는 주로 개발 논리다. 낡고 오래된 건물을 유지하는 것보다 새 건물을 짓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이다. 개인 소유 건축물에 대해선 역사적 의미가 있더라도 지방자치단체 등이 철거 문제에 개입할 명분이 마땅찮다.

이에 일부 지자체는 개인 소유 건물을 사 복원하기도 한다. 1923년 건립된 수원시 부국원(富國園)은 한국전쟁 이후 검찰 임시청사, 수원교육청 등으로 활용됐다. 이후 철거 위기에 놓이자 수원시가 사들여 복원했다. 인천시는 지자체 등록문화재로 등록해 보존·활용하는 방안 등 조례 개정으로 지역 문화재 지키기에 나서고 있다.

지자체가 나서서 근현대 건축물관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하는 시민단체들도 있다. 이들은 “지역 내 근현대 건축물을 파악해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물은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운기 인천도시 공공성 네트워크 간사는 “근현대 건축물은 도시의 정체성을 구성하고 지역 구성원간 공감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며 “이를 문화재로 등록해 현장을 보전하는 게 최선이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주민·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최대한 보존하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손장원 인천재능대 실내건축학과 교수도 “철거 후 다른 장소에 복원하는 방안은 쉽지 않고 그 가치가 퇴색될 수 밖에 없다”면서 “박물관에 보존하는 것보다는 주민들과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역사적 가치에 맞다”고 말했다.

최모란·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