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청소년 감독님 엽기발랄 상상력…진득한 문제의식…'끼 못 말리겠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1면

‘훼미리 사이즈 피자’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여고생 윤이. 친구들은 못생긴 윤이를 한없이 무시하고, 어머니마저 쌍꺼풀 수술을 권유하며 자존심을 건드린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다 거울을 보니 친구의 얼굴이 돼지로 보인다. 꿈인가 싶어 깨어 보려 하지만 현실이다. 교실에도, 거리에도 심지어 집에도 온통 돼지가 득실거린다. 결국 윤이는 돼지들의 세계에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불행한 최후를 맞는다.

단편영화 '돼지 속 나'의 줄거리다. 외모 지상주의를 비판하며,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13분짜리 짧은 영상물 속에 담겨 있는 상상력이 기발하다. 혹시 전문가의 작품으로 생각했다면 천만의 말씀. 영화를 만든 감독은 한국애니메이션고 강수림양이다. 다음 달 2일 막을 올리는 제8회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에서 경쟁부문 본선에 올랐다.

강양 같은 청소년 영화감독이 최근 급속히 늘고 있다. 학교 등에서 영상교육이 확대되고 디지털 캠코더의 보급이 빨라진 덕분이다. 이번 청소년영화제에서 상영되는 고교생 이하 감독의 영화는 29편이나 된다. 이 중에는 초등학생 작품도 있다. 전남 함평군 영창초등학교 학생들이 만든 '너는 무엇을 보고 있니'(지도교사 전남윤)다.

영화제 최윤희 프로그래머는 "만 24세 이하를 대상으로 올해 출품작을 공모했더니 예년에 비해 월등히 많은 600편이나 몰렸다"고 소개했다. '청소년 감독 전성시대'라고 부를 만하다.

청소년 작품이라고 수준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고급 촬영장비나 전문배우를 쓸 수 없기 때문에 화면과 연기는 다소 어색하지만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 많다. 최 프로그래머는 "예심 심사 결과 고교생 작품의 완성도가 일반인에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 매년 청소년 영화의 질이 향상되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말했다.

일부 작품은 국제영화제에도 초청받았다. 정체불명의 통신용어를 즐겨 쓰는 소녀가 외계인의 모습으로 변한다는 내용의 '외계소녀, 불시착하다'(감독 오민지.전남 보성고)는 이달 중순 미국 뉴욕에서 개막한 아시안아메리칸 국제영화제에 진출했다. 이번 청소년영화제 본선에도 오른 '훼미리 사이즈 피자'(김경미.한국예술종합학교)는 5월 독일 오버하우젠국제단편영화제에서 먼저 선보였다.

소재도 다양하다. 청소년영화제에선 여성.가족해체.동성애.학생인권.뇌물.탈북자 등 거의 모든 사회문제가 청소년의 시각에서 조명된다.

'생리대가 필요한 날'(정다이.경북 안동여고)은 여고생에겐 부끄러운 소재일 수 있는 생리를 한 달에 한 번씩 찾아오는 불청객으로 재치 있게 묘사했으며, '어느 멋진 봄날'(윤철환.배재고)은 고교생 동성애 문제를 과감히 다루고 있다.

업자→공무원→교사→경찰의 물고 물리는 비리사슬을 지적한 '아! 대한민국'(가성문.안양예고)이나 탈북 청소년들이 실제 체험을 토대로 탈북 과정의 험난함을 그린 '기나긴 여정'(양미.셋넷학교)도 눈길을 끈다.

'생리대가…'를 만든 정다이양은 "생리는 숨겨야 할 문제가 아니라 재채기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라며 "영화를 통해 조금이라도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다음 달 3일부터 6일까지 서울 명동의 씨너스극장을 찾으면 이들이 만든 영화를 직접 볼 수 있다.

주정완 기자

*** 바로잡습니다

7월 27일자 21면 '청소년 감독님 끼 못 말리겠네' 기사에서 '돼지 속 나'의 감독은 김평화양이 아니라 강수림양으로, '머나먼 여정'은 '기나긴 여정'으로 바로잡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