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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여당 의원이 되려는 이수진…동료 판사들은 당황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여당과 대법원 사이에 소통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의혹 폭로 뒤 정치, 모양 안 좋아” #냉각기 없는 판사의 총선 출마 #법조계 “정치·사법 유착 위험신호”

총선 출마를 선언한 이수진 부장판사(52·연수원 31기)는 지난 2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최재성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인재영입을 맡은 최 의원은 이 부장판사에게 “법관들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전혀 모르겠다”며 “국회에서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을 마무리해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법원 내 진보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으로 양승태 대법원의 강제징용 재판 지연 의혹을 언론에 알린 이 부장판사는 그렇게 총선 출마를 결심했다. 여당과 법원 사이에 연결고리가 되기로 한 것이다. 서울 소재 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그래도 검찰 출신 의원보단 판사 출신 의원이 더 낫지 않느냐”고 말했다. 판사와 정치권력이 너무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다 거래까지 하며 사달이 난 것이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이다. 이 부장판사와 여당은 이를 사법농단이라 부른다.

과거 대법원의 문제점을 폭로했던 부장판사가 이젠 권력이 된 여당의 일원이 되려는 모습에 판사들은 당황해하고 있다. 법원행정처의 고위 관계자는 “모양새가 좋지 않다. 특히 폭로하고 정치권에 가는 것은 더욱 안 좋다”며 “하지만 우리가 못 가게 할 수도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에 비판적 목소리를 내왔던 양홍석 변호사(참여연대 공익법센터장)는 “냉각기 없는 판사의 총선 출마는 정치와 사법이 사건의 밀접성을 넘어 인적 밀접성까지 갖추게 되는 위험한 신호”라고 우려했다.

이 부장판사가 총선 출마라는 ‘운명’을 받아들이며 문재인 정부 출범 뒤 법원에서 정치권으로 직행한 국제인권법 소속 판사는 세 명으로 늘어났다. 그에 앞서 김형연 법제처장(54세·연수원 29기)과 김영식 청와대 법무비서관(53세·연수원 30기)도 법관 퇴직 후 청와대 등 정치권력으로 직행했다.

이 부장판사에게 “왜 하필 지금 출마해 오해를 받냐”고 물어보니 “모두 사법개혁 때문”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법원 내에서 사법개혁을 외쳐도 국회에서 법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비례대표가 아닌 지역구로 출마해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이라 청와대로 직행한 선배 판사들과는 다른 상황이란 점도 강조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 촛불 판사라 불리며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던 박재형 변호사는 “이 부장판사라면 국회에서 사법개혁을 위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평가했다.

지난 2일 김명수 대법원장은 신년사에서 “법관의 독립을 위협하는 움직임에 단호히 맞서 소신껏 재판할 수 있는 여건을 굳건히 지키는 것도 잊지 않겠다”고 밝혔다. 법원행정처는 그 일환으로 법관 퇴직 후 2년간 청와대 비서실 임용을 금지하는 법원조직법 통과에 힘을 보탰다. 이것이 현재 법사위를 통과해 본회의에 계류 중인 이른바 ‘김형연 방지법’이다. 이 법을 발의했던 야당에선 이제 이수진 방지법을 발의할 가능성도 있다. 법원행정처는 이 법안에 반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한쪽에선 나경원도, 추미애도, 박범계도 판사를 하다 정치로 뛰어들었는데 왜 이수진만 문제를 삼느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다.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전직 대법원장이 기소돼 재판을 받는 지금엔 판사에겐 훨씬 엄격한 잣대가 적용돼야 한다”며 “특히 그 대법원장의 의혹을 폭로했던 판사라면 말할 것도 없다”고 지적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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