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외교의 숨은 "걸림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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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 4천안문사태 이후 미 중 관계가 아직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북경주재 미국대사관으로 망명(?)했던 중국의 저명한 반체제물리학자 팡리즈(방려지·53)부부의 피신생활이 벌써 5개월 째로 접어들었다.
북경유혈진압 사태가 있은 다음날인 5일 미대사관 직원들의 무장호위 속에 미 대사관으로 긴급피신, 한때 미 중간의 뜨거운 쟁점이 됐던 방려지와 리수시안 (이숙한·54) 부부는 이제 소식이거의 단절된 채 잊혀져가고 있는 형편이다.
지난 1일 중국건국 4O주년을 기념하는 화려한 전야제 불꽃을 이들 부부는 무엇을 생각하며 지켜보았을까. 한발 짝 밖이 조국이지만 내디딜 수 없는 것이 방 부부의 운명이다.
86년 12월 중국의 민주화시위이후 대학생들의 정신적 지주였던 이들 부부의 소식은 지구의 반대편인 미국을 통해 아득한 전파처럼 들리는 게 고작이다. 최근 미 국무부는 『2일 현재 방 부부는 북경 미 대사관에 피신 중이다. 중국 측과 신병인도를 위한 협상을 한일은 없다. 이것이 이 부부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소식의 전부』라고 밝혔다.
중국에서도 이들에 대한 비난이 최근에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미국이나 중국 모두가 더 이상 방·이 부부가 화제에 오르지 않기를 바라는 눈치다.
미국이 이들을 국외로 도피시킬 수도, 그렇다고 중국이 강제로 이들을 구속할 수도 없는 처지다. 어느 쪽이나 상대방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미 중간의 새로운 움직임이 최근 들어 조심스럽게 나타나고 있다.
중국의 최고실력자 덩샤오핑 (등소평)이 지난달 16일 노벨상 수상자인 미 컬럼비아대 리껑다오(이정도) 교수를 접견, 중병 설을 일축하고 1백일만에 처음으로 공식석상에 나타나 대미 관계개선의 신호를 보냈다.
베이커 미 국무장관은 유엔총회기간에 첸치천 (전기침) 중국 외교부장과 회담, 미 중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했다.
미 상무부도 중국 무역대표단의 방미를 묵인, 중국 측도 놀랄 정도였다.
더구나 부시 미 대통령은 망명 중국인학생의 「민주연맹」집회를 미국 내에서 금지하는 등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인권보호를 주장하는 미국이나 내정간섭이라고 반박한 중국으로서는 방 부부 문제는 「목구멍에 걸린 가시」일지도 모른다.
최근의 움직임으로 보아 양국 모두 내심으로는 천안문 사건이후 껄끄러운 관계를 조속히 청산하려는 듯 보인다.
결국 이 문제는 양국의 체면을 살리면서 조용히 시간을 버는 장기적인 접근으로 해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이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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