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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유례 없는 나흘째 '세밑' 전원회의 개최

중앙일보

입력

북한이 31일 나흘째 전원회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런 방식은 김정은 국무위원장 집권 이후 처음이다. 특히 북한은 새해 정책 방향을 대내외에  밝히는 신년사 발표를 하루 앞둔 2019년 마지막 날에도 전원회의를 진행 중이다. 이는 북한 정권 수립 후 유례가 없는 일이다.

'연말 시한' 엄포, 이레적인 전원회의 개최로 넘기나 #중국, 러시아의 대북제재 해제 노력 감안한 속도조절? #회의 전날까지 현장지도 나섰던 경제사령관 박봉주는

북한은 정권 수립 이후 12월에 23차례의 전원회의를 했는데, 제3차 7개년(1987~1993) 계획을 채택한 1986년 12월 27일 전원회의가 1년 중 가장 늦은 시점이었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은 전해의 업무 실적을 평가하고, 새해의 시정방침을 밝히는 신년사를 중시하기 때문에 신년사 준비를 위해 12월 내내 총화(결산)하는 등 총력을 기울인다”며 “하지만 신년사 발표 직전까지 전원회의를 하는 건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북한은 지난 30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3일 차 회의를 이어갔다고 3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전원회의는 계속된다"고 전해 2019년의 마지막 날에도 회의가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북한은 지난 30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 3일 차 회의를 이어갔다고 31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전원회의는 계속된다"고 전해 2019년의 마지막 날에도 회의가 계속될 것임을 시사했다. [사진 조선중앙통신]

다른 고위 당국자는 “김 위원장 집권 이후 신년사에서 ‘나는’이라는 표현이 종종 등장한다. 김 위원장이 최종 첨삭을 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그런데 신년사를 발표하기 전 신년사 준비에도 빠듯할 텐데 전원회의를 열어 김 위원장이 사흘 연속 보고를 한 건 이번 전원회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통상 1월 1일 0시에 신년사를 녹화하고,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해왔다. 그런데 올해엔 물리적으로 신년사 검토에도 시간이 빠듯한데, 나흘째 전원회의에 몰두하고 있다. 신년 초에도 전원회의를 계속 이어가거나, 전원회의 결정서를 신년사로 대체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단,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이 보고를 마쳤다”라거나 “결정서 문구 초안 작성에 들어갔다”고 밝혀 전원회의가 거의 막바지 단계에 접어들었음을 알렸다.

대내외 시위? 

이 같은 이례적인 전원회의 개최 배경을 두고 북한이 전원회의를 대내외 시위의 목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연말까지 미국의 새로운 셈법을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겠다고 소위 ‘연말 시한’을 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말을 아무 일 없이 그냥 넘길 수 없어 유례없는 전원회의를 진행 중이라는 분석이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이 이번에 군사적 도발을 한다면 마지막 카드일 수 있는데 결과를 장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카드를 쓰기는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며 “전원회의로 대신하려는 의도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을 원한 고위 탈북자도 “북한은 김 위원장이 (30일) 보고를 7시간 했다고 보도했는데 바쁠 경우에는 회의시간을 늘려서라도 회의 개최일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며 “의도적으로 회의를 연장하는 방식을 택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30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3일 차 회의 모습. [사진 조선중앙통신]

지난 30일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3일 차 회의 모습. [사진 조선중앙통신]

양무진 북한대학원 대학교 교수는 “북한은 1953년 8월 6.25 전쟁 직후, 62년 12월 중·소분쟁 직전, 90년 공산권 붕괴 시점 등 국내외 정세가 복잡하고 어려운 시기에 전원회의를 5일간 개최한 사례가 있다”며 “이번 회의도 이미 4일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서 어려운 국내외 정세를 반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연말까지 미국의 반응 살피기? 

미국이나 국제사회의 반응을 지켜보기 위한 차원이라는 지적도 있다. 북한이 두 차례(7일, 13일) 미사일 엔진 연소 실험을 하며 도발을 기정사실로 하자 북한의 후견국인 중국과 러시아는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지난 16일(현지시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했다. 미국이 반대하고는 있지만, 러시아 주관으로 안보리는 30일(현지시간) 비공식 논의까지 진행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문재인 대통령에 이어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각각 전화 통화를 하며 상황 관리에 들어갔다. 전직 정부 고위 당국자는 “국제적으로 물밑 움직임이 진행되는 가운데 북한으로선 당장 도발을 하기보다는 진행 추이를 지켜볼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며 “시간 벌기 차원에서 이례적으로 긴 전원회의 개최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열린 제7기 5차 전원회의 첫날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 열린 제7기 5차 전원회의 첫날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9일 열린 7기 5차 전원회의 둘째날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머리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9일 열린 7기 5차 전원회의 둘째날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머리에 아무것도 바르지 않았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0일 열린 전원회의(제7기 5차) 셋째날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첫날처럼 머릿기름을 바르고 뒤로 넘기는 올백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0일 열린 전원회의(제7기 5차) 셋째날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첫날처럼 머릿기름을 바르고 뒤로 넘기는 올백 모양을 하고 있다. [사진 노동신문]

경제사령관은 어디에?

북한이 공개한 사흘(28~30일) 동안의 회의 사진에서 경제사령관으로 불렸던 박봉주 당 부위원장과 노두철 국가계획 위원장이 주석단에서 사라진 점이 주목된다. 박 부위원장은 북한에서 서열 3~4위를 유지해 왔고, 지난 27일(보도일 기준) 상원시멘트 연합기업소를 현장 지도했다. 전원회의 직전까지 공개 활동을 이어온 셈이다.

박 부위원장은 지난 17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일을 기해 진행한 금수산태양궁전 참배 때도 김 위원장의 왼쪽을 지켰다. 그런데도 그가 사흘 연속 주석단에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을 두고 정치국 위원 자리에서 물러났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회주의 계획경제의 ‘계획’ 부분을 책임진 노두철 내각 부총리 역시 지난 4월 내각 총리를 김재룡으로 교체한 뒤 물러났거나 경제 재건 속도에 대한 불만으로 위상이 조정됐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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