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살인광선·풍선폭탄도 있었다, 日이 82년전 세운 극비연구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옛 일본 육군이 비밀전을 수행하기 위해 창설한 노보리토연구소에서 개발하던 풍선폭탄. 이 폭탄은 항공기 폭격을 대신하기 위한 것으로 현대전의 무인 폭격기를 연상시킨다. [다큐멘터리 육군노보리토연구소 화면 캡처]

옛 일본 육군이 비밀전을 수행하기 위해 창설한 노보리토연구소에서 개발하던 풍선폭탄. 이 폭탄은 항공기 폭격을 대신하기 위한 것으로 현대전의 무인 폭격기를 연상시킨다. [다큐멘터리 육군노보리토연구소 화면 캡처]

옛 일본군의 비밀연구소 유적을 둘러싸고 일본의 한 대학에서 논란이 일고 있다. 29일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메이지대는 이쿠타 캠퍼스(가와사키시 다마구 소재) 내에 교사를 신축하기 위해 옛 일본 육군의 노보리토연구소 유적지를 철거할 계획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일부 교수들이 철거를 반대하고 나서면서 학내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중일전쟁 발발 1937년 비밀리 창설 #'살인광선''풍선폭탄'…21세기 무기? #메이지대, 신교사 지으려 일부 철거 계획

노보리토연구소는 일본이 중일전쟁을 일으킨 1937년 육군과학연구소 노보리토 실험장으로 세워졌다. 이후 제9육군기술연구소로 개칭됐다. 일본이 패전할 때까지 이 연구소의 존재는 극비에 부쳐졌다. 생화학무기를 개발하거나, 적국의 경제를 교란시키기 위한 위폐를 제조하는 등 일본군의 ‘비밀전’을 수행하기 위한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살인광선'이라 불렀던 레이저무기, 항공기를 활용한 도양(渡洋)폭격의 대안으로 고안한 풍선폭탄 등 당시로선 생각하기 힘든 무기 개발을 진행했다. 이들 무기를 두고 레이저포와 무인 폭격기(드론)의 원형에 가깝다는 주장도 나온다. 생체 실험을 위해 연구원들이 중국으로 건너간 일도 있다고 한다.

전성기였던 1944년에는 약 36만3000㎡ 규모의 부지에 100여개 동의 연구실을 갖췄다. 기술자, 작업자 등 약 1000여명이 연구소에서 무기 개발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장교를 제외한 모든 연구소 직원은 사복을 입고다녔고, 비밀누설을 막기 위해 헌병이 이들의 동선을 계속 감시했다고 한다. 이곳의 실상은 전후 연구소 근무자들이나 지역 주민의 증언으로 알려졌다.

메이지대가 연구소 부지를 매입한 것은 지난 2010년이다. 이후 대학 측은 옛 실험동을 활용해 ‘평화교육 노보리토연구소 자료관’을 열어 관련 자료를 전시해왔다. 최근 메이지대는 이공학부 신교사를 짓기 위해 연구소 일부를 헐기로 방침을 정했다. 그러나 유적 존치를 주장하는 학내 반대 움직임에 따라 철거 결정을 내리진 못했다. 메이지대 관계자는 마이니치에 "내년 1월쯤 최종 결론이 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