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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만행 미화 안 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역사교과서의 개정과 수정을 강요한 일본 문부성의 교과서 검정방식이 「사회통념상」합헌· 합법이라는 일본법원의 판결이 내려졌다.
남의 나라 교과서의 검인정 과정에 대한 법의 판결에 시비를 붙일 뜻은 없다.
우리가 여기서 엄중하게 제기코자하는 바는 그 교과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지시내용이 분명 일제 침략의 역사를 왜곡·은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사회의 통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일본인들의 의식구조에 있다.
우리를 비롯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근세사를 통한과 치욕의 역사로 더럽혀놓은 당사자들이 아직도 그 만행에 대해 사죄와 자생의 빛을 보이지 않은 채 왜곡과 은폐를 하고있고 이를 사회 통념상 용인했다는 사실에 대해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역사왜곡의 첫 번 째 부분은 일본의 중국 「대륙침략」 이라는 분명한 역사적 사실을 「무력진출」 이라는 용어로 바꾸라는 지시였다. 이미 1차 세계대전과 함께 시작된 일본의 중국침략은 산동성과 만주의 특수 권익을 요구하는 21개조 요구로 시작되어 중국 최대의 문화혁명이라는 5· 4운동을 유발했고, 만주를 침략해 만주국이라는 괴뢰정권을 세우고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삼아 중국대륙 전체를 전화의 더미로 초토화시킨 8년여의 중일전쟁을 단순히 무력진출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둘째, 남경대학살사건은 「일본군이 조직적으로 학살한 것처럼 보이니 표현을 바꾸라」는 지시였다. 이른바 남경대학살은 중일전쟁 첫 해인 37년12월 중국 남경을 점령한 일본군이 시민 30만 명을 학살, 생매장했던 유례없는 잔학 행위였음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사회통념은 전쟁 중「흔히 있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셋째, 독립운동을 했던 이유로 체포했던 한국인과 중국인을 산채로 세균전의 실험대상으로 삼아 갖은 고통 속에 죽게 했던 731부대의 만행을 사료부재와 연구 미진을 이유로 완전 삭제를 지시했다. 교과서의 저자 에구치 교수가 지적했듯이 유년 소련에 주둔했던 731부대의 만행은 군사재판을 통해 이미 수많은 자료가 발견되었고 실험 대상자 3천명 중 단 한 명도 살아 남지 못했음을 검증한 바 있다.
개인이든, 국가든 지난날의 잘못과 오욕을 되살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있어 역사가 소중한 까닭은 그 지난날의 잘못된 과거 사실을 자생의 자료로 삼아 다시는 그러한 잘못과 비행이 재발되지 않도록 귀용으로 삼자는 데 역사의 초보적 필요성이 생겨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을 살고있는 일본인의 의식구조가 아직도 지난날의 잔학과 만행을 참회하기는커녕 은폐하는데 골몰한다면 바로 그 사회적 통념이 2차 대전 중 피해를 준 인접 아시아 국가들에는 오만과 위협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연간 방위비 3백억 달러에 최신·최강의 군사무기를 갖춘 군사대국으로서의 일본이 최근 들어 방어치중에서 전진방어로 자위대의 기본전략을 전환하겠다는 전략상의 변화가 이번 판결이 그 바탕으로 삼고 있는 국민통념을 배경으로 삼고있음을 우리는 경계한다.
우리는 최근 미소의 데탕트로 말미암아 아시아-태평양 일대에 힘의 공백이 형성되고 있음을 주시하면서 일본 내에 슬금슬금 일고 있는 과거 만행의 정당화 경향이 일부 일본인들의 새로운 군사적 야망을 대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려한다.
만행과 잔혹의 지난 역사를 분식시키고 왜곡하는데 급급한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거울로 삼아 되살아나는 군국주의의 망령을 추방하는 지혜로 삼기를 당부한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나 역사적 사실은 그것이 추악하든, 아름답든 객관적 사실로 기록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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