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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즐거움을 찾다…울진,소나무숲,불영사,차 한잔…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29)

우먼센스 1월호를 기획하며 몸도 마음도 리프레시 될 만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싶었다. 맛있는 제철 음식을 즐기고, 차가운 산 공기에 머릿속을 정리하며, 바닷바람 맞으며 한 해를 계획하고, 온천탕 안에서 힐링할 수 있는 곳. 이 모든 것이 가능한 곳을 찾다 보니 한 곳이 떠올랐다.

경북 울진! “사람의 등을 생각해 보면 양손이 안 닿는 중간 지점이 있잖아요. 이를테면 대한민국에서는 그런 곳이 울진이에요. 아직 직접 가는 기차 편도 없고, 고속버스도 없어 다른 지역보다 시간이 걸려 찾아가야 하는 곳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더 청명하고 깨끗한 자연,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만날 수 있고요” 언젠가 누군가에게 들었던 울진 예찬이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다. 고민 없이 울진을 목적지로 정했다.

평해사구습지. 바다를 마주한 솔숲이 평화롭다. [사진 우먼센스(이대원, 김성아), 울진군]

평해사구습지. 바다를 마주한 솔숲이 평화롭다. [사진 우먼센스(이대원, 김성아), 울진군]

울진의 상징과도 같은 금강소나무숲길 대왕소나무. 600여년의 풍파를 견딘 소나무를 바라보며 첫날의 기운을 얻었다.

울진의 상징과도 같은 금강소나무숲길 대왕소나무. 600여년의 풍파를 견딘 소나무를 바라보며 첫날의 기운을 얻었다.

지역의 문화를 잘 아는 이와 동행해야 좋은 스토리를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이번 여행 기사는 ‘효재 함께하는 겨울 울진 여행’으로 정했다. 효재 디자이너가 평소에 전했던 말이 기억났기 때문이다. “울진에 있는 불영사가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꼭 한번 가 봐야 해요. 소나무를 바라보고 앉아 그곳에 계신 일운 스님과 차 한잔할 때, 진짜 차 맛을 느낀다니까요. 경내가 아름다운 건 물론이고요. 울진 문어는 어떻고요. 손님상에 이만한 식재료가 없어요. 아무런 간을 안 하고 데치기만 해도 풍미와 식감이 대단해요. 다른 음식이 필요 없을 정도예요.”

효재 디자이너에게 울진 여행에 대해 이야기했더니 ‘편집장님도 이번에는 같이 가 봐요. 놀라운 곳이에요.’라며 동행을 권했다. 겨울 여행, 게다가 바다와 산이 함께 있는 울진으로의 여행이라. 취재 기자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도 있겠지만, 효재 디자이너의 권유에 못이기는 척 동행하기로 했다.

산 속에 파묻힌 고즈넉한 불영사 경내(좌). 국내 유일의 자연 용출 온천인 덕구온천(우). 사시사철 푸른 응봉산의 소나무를 바라보며 야외 온천을 할 수 있다.

산 속에 파묻힌 고즈넉한 불영사 경내(좌). 국내 유일의 자연 용출 온천인 덕구온천(우). 사시사철 푸른 응봉산의 소나무를 바라보며 야외 온천을 할 수 있다.

대게와 문어, 미역 등 싱싱한 해산물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울진의 또 다른 매력이다.

대게와 문어, 미역 등 싱싱한 해산물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건 울진의 또 다른 매력이다.

과연 울진은 기대했던 그대로였다. ‘삼욕(온천욕, 삼림욕, 해수욕)의 도시’로 불리는 이곳에서는 한 곳에서 3가지 즐거움을 찾을 수 있다. 길게 펼쳐진 해구와 아름다운 솔숲, 어민들의 활력을 느낄 수 죽변항, 오래된 소나무가 쭉 뻗어 있는 깊은 산자락과 마음까지 녹여주는 온천! 문어와 대게를 비롯한 싱싱한 해산물은 울진에 빠져들게 하는 또 다른 매력이고 말이다.

“신년맞이 울진 여행은 이런 의미도 있겠네요. 1월의 화투패요. 일년 열 두 달 피고 지는 꽃과 동물이 그려진 화투에서 1월의 패는 소나무와 학이 그려져 있잖아요. 1월에 그 그림이 그려져 있다는 건 사시사철 푸르름과 무병장수를 기원하기 마음 때문 아닐까요 울진이 그런 도시예요.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생동감이 넘치죠. 넓게 펼쳐진 바다와 그걸 마주보는 소나무가 이렇게 매력적인 곳은 없을거에요.” 효재 디자이너의 말 대로 한 해의 계획과 바람을 정하기에, 너른 바다와 쭉 뻗은 소나무가 일품인 울진만큼 좋은 곳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 울진 여행으로 새롭게 얻은 것이 있다면 차를 즐겨 마시게 되었다는 점이다. 취재 중우연하게 울진 지역의 차모임을 알게 되었고, 이들의 초대로 두천리 산속 계곡 앞에 자리 잡은 차 공간 다예촌에 들르게 되었다. 오직 차를 마시기 위해 만들어진 작은 방. 그곳 통창으로 산과 계곡을 바라보며 보이차를 마셨는데, 물소리 바람소리, 은은하게 퍼지는 차의 향, 미각을 깨우는 쌉사레한 차의 맛에 온 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느낌이었다.

불영사 회주 일주 스님과 효재 디자이너를 통해 차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불영사 회주 일주 스님과 효재 디자이너를 통해 차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불영사의 회주 일운 스님과도 차 자리를 가졌다 천축산 깊은 곳에 위치한 불영사는 여성 스님들이 머무는 비구니 사찰로, 산 속 바위가 경내 호수에 부처의 모습으로 비춰진다고 해서 불영사(佛影寺)란 이름을 얻은 곳이다. 차분하고 정갈한 경내에서 스님과 마신 차 한잔. 사찰음식 대가로 알려진 일운 스님은 몇 권의 책을 출간하기도 했는데, 이 중 〈마음이 담긴 길을 걸어라〉에는 스님의 차 사랑이 그대로 담겨 있다.

‘피로하거나 참선하다 졸음이 올 때 잠시 나와서 차를 한 잔 우려 마시면 졸음도 물러가고 피곤함도 풀립니다. 차는 몸도 마음도 맑고 깨끗하게 하는 덕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차 한 잔이 그 어떤 음료보다 많은 역할을 합니다. 혼란한 생각을 물리치고 정신을 맑게 해주는 것도 차의 역할입니다’

울진을 여행하는 동안 이렇게 차에 집중하게 된 건 동행한 효재 디자이너의 차 사랑 때문이기도 했다. “난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차를 우려내 한 시간 동안 마셔요. 아무 것도 안 하고 차와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는 거죠. 그럼 몸에 따뜻한 기운이 확 돌면서 깨어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 시간 동안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도 하고,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생각도 하구요. 편집장님고 그렇게 마셔봐요,”

다예촌 차 모임 회원들이 초대한 차 자리.

다예촌 차 모임 회원들이 초대한 차 자리.

자타공인 차 마니아인 효재 디자이너의 조언은 유효했다. 울진 여행 이후 시간이 날 때마다 차를 우려 마시고 있는데 실제로 몸이 깨끗해지는 느낌을 받게 되었고, 속도 편해졌다. 스님 말씀처럼 마음이 평안해지는 건 물론이고 말이다.

‘차는 사람에게 매우 좋은 음료이다. 좋은 차를 마시면 갈증을 없애고, 음식을 소화시키고, 담을 제거하고, 잠을 쫓고, 소변에 이롭고, 눈을 밝게 하고, 머리가 좋아지고 걱정을 씻어주며 비만을 막아준다.’ 대원사에서 출간된 〈다도〉(이기윤 글 사진)에서도 차의 고전인 ‘다경’의 문구를 언급하며 차의 효능 중 가장 큰 부분이 정신생활을 건강하게 한다고 적혀 있다.

며칠 후면 새해가 된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곳에 가서 차라는 좋은 친구를 얻게 되었다. 기분 좋은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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