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꼰대와 신세대? 당장 상상의 전쟁에서 뛰쳐나오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28)

최근 ‘세대’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하게 된 두 가지 경험을 했다. 우선 지난 11월 25일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중앙일보 ‘2019 더, 오래 콘서트’에서 듣게 된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수의 강의다. 한 시간 가까이 ‘어떻게 사는 것이, 어떤 일 하는 것이 행복할까’에 대해 전하셨는데 그중에서도 내 마음에 남았던 부분은 ‘자신을 고집하지 않아야 하며, 과거 지향적이지 않아야 한다’라는 대목이었다.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필요한 덕목이라는 말씀에 무릎을 치며 공감했다. 그러기 위해 늘 독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말이다. 조목조목 자신의 경험을 녹여가며 오랜 기간 잘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노학자의 모습은 그 자체로 영감이 되었다. 세대를 뛰어넘는 진실이랄까.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필요한 덕목이다. [사진 unsplash]

받아들이고 변화하고 성장하는 과정은,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서 나이와 상관없이 필요한 덕목이다. [사진 unsplash]

두 번째 경험은 지난 일요일 지하철 안이었다. 지하철이 광화문역에 도착하자 족히 100명은 넘어 보이는 태극기 집회 참가자들이 내가 타고 있던 지하철 칸에 탑승하기 시작했다. 대부분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이었는데 아마 집회가 끝나고 다 함께 어딘가로 이동하는 듯 보였다. 광화문 역 이후 지하철 내부의 공기가 사뭇 달라졌다.

꽉 차 있는 승객들 사이로 태극기를 꽂은 채 유튜브 개인 방송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나란히 앉아 영상을 틀어 놓으며 정치 토크쇼를 시청하는 사람도 있었으며, 조금 큰 목소리로 멀리 있는 일행을 챙기는 사람도 있었다. 분위기가 한순간에 바뀌는 상황에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지었더니, 옆에 서 있던 딸 아이가 나에게 말을 건넸다. “저분들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겠지. 촛불 집회 참가한 사람들처럼.” 무관심하게 툭 던지는 딸 아이의 이야기에 피식 웃고 있는데, 옆자리 상황도 눈에 띄었다.

몸을 붙여가며 비좁게 서 있던 승객들 앞자리가 하나 빈 상황이 되었는데, 일행에게 자리를 양보하듯 서로 눈치를 보던 집회 참가 어르신들을 못 보았는지 자리 앞에 서 있던 20대 초반 승객이 자연스럽게 그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어제저녁 예능 프로그램을 태연하게 시청하는 것 아닌가. 같은 시간과 같은 공간에 있지만 그것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방식이 다른 세대라는 게 한순간 느껴졌다. 태극기 어르신들, 나, 그리고 딸을 필두로 한 소위 Z세대의 아이들 말이다.

세대차이 해결을 위해선 자신의 삶을 고집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의 지난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사진 unsplash]

세대차이 해결을 위해선 자신의 삶을 고집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의 지난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된다. [사진 unsplash]

‘세대차이’, 세대로 달라진 세상을 바라보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되는 분석방식이다. 베이비붐 세대를 거쳐 X세대, 밀레니얼세대, 그리고 요즘 가장 자주 이야기되는 Z세대까지 말이다. 물론 나라마다 지역마다 역사가 다르기에 세대를 나누는 시기와 부르는 방식에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다.

한국의 경우 산업화세대, 민주화세대(386세대)라는 말로 자주 분류의 틀을 잡는다. 이렇게 세대를 가르고 이들이 경험했던 과거와 현재를 이유로 이들을 하나로 묶는 성격과 지향을 정리한다. 이렇게 분석한 내용을 바탕으로, 세대별 차이를 언급하고 표면화되거나 잠재된 갈등을 해석하는 글들이 쏟아진다. 나 역시 다름에서 오는 불편함을 이해하기 위해 자주 이 틀을 사용하곤 했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의 세대게임. [사진 문학과지성사]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의 세대게임. [사진 문학과지성사]

위 두 가지 경험의 시간 이후 스스로 질문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세대를 분류하고 분석한 이후에는 무엇을 해야 하는 걸까. 나눠서 이해한 후에 말이다. 다른 시간을 살아온 사람들은 결국 다른 사람들일까.

마침 집에 있던 책 한 권이 생각나 찾아보기 시작했다. ‘세대 프레임을 넘어서’란 부제를 단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의 『세대게임』(문학과지성사). 촛불 집회 이후 정권이 바뀌고 그 과정에서 태극기 집회가 맞서 생긴 상황을 토대로, 세간을 장악한 프레임인 세대 담론을 비판한 책이다.

책은 사회현상을 세대로 분석하는 방식을 ‘게임’으로 바라보고, 각각의 ‘세대 당사자’ 뒤에 특정한 목적, 즉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해 게임을 고안하고 설계해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세대 플레이어’가 있다는 설명으로 시작한다. 사회 문제를 ‘세대’를 통해 해석하고, 이 문제들의 주요 원인이 세대의 대립이라고 주장하며 다른 원인들을 감춘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대 갈등이 아닌 사안을 ‘세대 프레임’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대부분의 사회문제는 ‘싸가지’ 없는 신세대와 ‘꼰대’인 구세대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청년 대 기성세대’라는 상상의 전쟁’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언론과 정치권에서 흔히 사용하는 세대 갈등에 대해 무작정 따라가지 말고 ‘의심하고 주저하라’!

책을 다시 펼쳐보며 마음속 질문을 조금은 정리할 수 있었다. 시간과 경험의 좌표 안에 의심 없이 사람들을 위치해 놓고, 주저하지 않고 현상만 읽어내서는 세대차이 이야기만 하고 살아가게 된다. 실제적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자신의 삶을 고집하지 않아야 하고, 자신의 지난 시간을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김형석 교수의 이야기처럼 말이다.

우먼센스 편집국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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