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김태희가 출산 뒤 먹었다더라"…가격 5배 초당옥수수의 대박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초당옥수수(오른쪽)은 일반 찰옥수수에 비해 색이 노랗고 당도가 높다. [사진 식탁이 있는 삶]

초당옥수수(오른쪽)은 일반 찰옥수수에 비해 색이 노랗고 당도가 높다. [사진 식탁이 있는 삶]

김재훈 식탁이 있는 삶 대표 인터뷰 

'푸드 큐레이션(먹거리 추천)' 기업을 표방하는 ‘식탁이 있는 삶’(이하 식삶) 이 2014년 여름 백화점에 야심차게 내놓은 초당(超糖ㆍ수퍼스위트) 옥수수는 4년 투자의 결과였다. 김재훈(36) 대표가 일본 식품 박람회에 가서 찌지 않고 까서 과일처럼 먹는 초당옥수수를 맛보고 ‘꽂힌’ 것은 2011년. 해외 종묘사 접촉, 1만 립(粒·곡식 단위로 옥수수 를 예로 들면 여러 개가 나오는 한 줄기가 솟는 씨앗) 수입, 재배지 물색, 두 차례에 걸친 시범 재배를 거쳐 상품화하고 보니 2014년 여름이었다.

김 대표는 “난 아삭한 식감과 달콤함, 시원함이 새롭다고 느껴 반드시 될 것이라고 믿었는데 도무지 팔리지 않았다”며 “친구들까지 ‘옥수수를 날로 먹다니 소여물이 아니냐’고 되물었다”고 말했다. 첫해는 결국 전부 떨이로 넘기고 한 해 장사를 시원하게 망쳤다.

초당옥수수가 뭐라고 

식자재 스페셜티(Specialtyㆍ고부가가치 작물) 시대다. 샤인머스캣 포도, 납작 복숭아, 짭짤이 토마토와 같은 듣도보도 못한 먹거리가 관심을 받으면서 급부상한다. 지난해 여름부터 관심이 높은 초당옥수수도 이중 하나다. 바나나처럼 바로 까서 먹을 수 있어 해외에선 간식으로 흔하지만, 우리에겐 낯설었다. 초당옥수수의 깜짝 인기 뒤엔 식삶이 있었다.

첫해는 쪽박이었지만 이듬해 바로 대박이 났다. 식삶이 ‘초당옥수수 먹는 법’이라는 콘텐트를 제작해 사이트에 걸자 반응이 달라졌다. 유명 살림 커뮤니티에서 앞다투어 공동구매 주문을 넣었다. 유튜브 먹방 제작자는 “먹어봤습니다” 단골 품목으로 초당옥수수를 택했다. 달지만(통상 20브릭스 이상) 칼로리가 찰옥수수의 절반(100g 당 96 칼로리)이라는 점을 강조하자 다이어트 커뮤니티에서도 주문이 몰렸다. 일이 되려니, ‘배우 김태희가 출산 한뒤 초당옥수수를 먹었다’는 소문이 퍼졌다(김태희는 이런 말을 직접 한 적이 없다). 소비자 궁금증은 커졌지만 공급할 유통업체는 식삶 뿐이었다.

소여물 얘기는 쏙 들어갔다. 가격은 찰옥수수의 다섯배인데도 입고되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김 대표는 “우리가 산지 투자를 많이 해 진입 장벽을 높여 놓았기 때문에 다른 식자재 업체가 경쟁에 뛰어들 수 없어 몇 년간 이 시장은 오롯이 우리 것이 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식탁이 있는 삶이 운영하는 식자재 몰 퍼밀. [퍼밀 홈페이지 캡처]

식탁이 있는 삶이 운영하는 식자재 몰 퍼밀. [퍼밀 홈페이지 캡처]

식자재도 스페셜티 시대 

2014년 식자재몰 ‘퍼밀(per meal)’ 운영에 나서면서 재창업한 식삶은 초당옥수수를 발판으로 다양한 스페셜티 먹거리를 확대할 수 있었다. 올해도 전체 매출(150억원)의 10% 정도가 초당옥수수에서 나왔다. 5~6월에 나오는 하우스 초당옥수수를 독점 공급하고 7~8월 출하되는 노지 초당옥수수 전국 물량 60%를 식삶이 댄다.

올해 판매량은 첫해 재배물량의 120배인 120만 립이었다. 내년엔 두 배 이상을 더 늘려 총 300만 립을 확보해 두었다. 김 대표는 “재배 농가와 장기 계약(7년)을 맺고 자동화 설비를 갖춰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게 된다”고 전했다.

초당옥수수를 들어 보이고 있는 김재훈 대표 [사진 식탁이 있는 삶]

초당옥수수를 들어 보이고 있는 김재훈 대표 [사진 식탁이 있는 삶]

김 대표의 식자재 사랑 뿌리는 고향이다. 마늘로 유명한 경북 의성 출신인 김 대표는 대학재학(동국대 행정학) 중이던 2003년부터 식자재 유통에 나섰다. 농부의 아들로서 1년 내 고되게 일하고도 남는 게 별로 없는 농업 구조를 바꾸고 싶었다. 김 대표는 “농업 구조를 바꾸고 스마트한 인력이 많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스페셜티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쌀수매와 정부 보조금 제도, 농업 정책도 대폭 재편해야 한다고 본다. 그는 “정보 없이 마구잡이로 생산해 가격이 폭락하면 정부 지원을 받는 구조를 깨야 농업이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식삶은 이를 위해 산지와 협업을 늘리고 이야기가 있는 마케팅 중심 영업을 펼치고 있다.

농업의 가치 높이기 

현재 전자상거래 세계에서 식자재는 계륵이다. 무섭게 성장하는 시장이지만, 소비자가 만족하는 상품을 신선한 상태로 배달하기까지의 비용이 많이 든다. 비용 대비 수익은 형편없다. 매출이 늘면 적자는 더 빠르게 불어난다. 마켓컬리나 쿠팡 프레시 등 식자재로 성공했다고 하는 서비스까지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고민이다.

김 대표는 “대다수 온라인 식품몰이 먹거리를 결국 가전이나 생필품을 팔기 위한 미끼 상품으로밖에 취급하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고 말했다. 팔아도 마진이 없으니 소비자 유인용으로만 쓰이고, 투자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김 대표의 말처럼 먹거리로 시작한 업체도 또 다른 수익 모델을 찾아야 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업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마켓컬리도 최근 생활용품을 팔면서 수익 구조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

식탁이 있는 삶 김재훈 대표는 "스페셜티가 한국을 농업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식탁이 있는 삶]

식탁이 있는 삶 김재훈 대표는 "스페셜티가 한국을 농업을 살릴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식탁이 있는 삶]

식자재 최저가 공급을 위해 유통업자는 농민에 단가를 낮출 것을 요구하고, 농민은 이에 맞춰 안전한 작물을 대량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가치가 높은 식자재 생산은 뒷순위로 밀린다. 결과적으로 농민은 늘 허덕인다.

“첫 상장 식자재몰이 될 것”

이런 상황에서 식삶은 산지에 대한 장기 투자가 성과로 이어진 드문 사례다. 초당옥수수는 4년 투자하고 기다려 돈을 벌고 있고, 앞으로도 주력 상품 역할을 할 전망이다. 다음 히트작 개발에도 열심이다. 스낵 토마토(당도가 높아 과일처럼 먹는 토마토), 제주산 클레멘타인 오렌지, 국산 깔리만시, 동굴 속 호박 고구마, 분원배추(조선시대 배추 진상지역인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재배) 등이 이 중 일부다.

다른 곳에서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먹거리를 키우고 고유한 사연을 입혀, 제값을 받고 판다는 목표다. 식삶은 현재 전국에 협력사 60곳을 개발했고 독점계약 재배 품목 20개를 보유하고 있다. 꼭 될 똘똘한 제품만 키운다는 목표로 제품 가짓수도 150개 정도로 한정하고 있다.

동굴에서 숙성해 당도를 높인 동굴 속 호박고구마. 식탁이 있는 삶이 '포스트 초당옥수수'로 미는 식자재다. [사진 식탁이 있는 삶]

동굴에서 숙성해 당도를 높인 동굴 속 호박고구마. 식탁이 있는 삶이 '포스트 초당옥수수'로 미는 식자재다. [사진 식탁이 있는 삶]

당도가 높아 과일처럼 먹는 스낵 토마토. [사진 식탁이 있는 삶]

당도가 높아 과일처럼 먹는 스낵 토마토. [사진 식탁이 있는 삶]

경북 의성 꼭지사과. 과일 꼭지는 다른 상품에 상처를 입혀서 바짝 자른다. 이 사과는 신선도를 택한 실험이다. [사진 식탁이 있는 삶]

경북 의성 꼭지사과. 과일 꼭지는 다른 상품에 상처를 입혀서 바짝 자른다. 이 사과는 신선도를 택한 실험이다. [사진 식탁이 있는 삶]

아직 갈 길은 멀다. 올해 매출액은 150억원, 영업손실은 3000만원이다. 다른 식품몰에 비해 준수하지만, 적자는 적자다.
김 대표는 “내년엔 제철 식자재로 요리하는 전문 식당을 내고 레디투잇(ready to eat) 형태로 가공된 초당옥수수 상품도 나올 예정”이라며 “2021년께 매출액을 1000억 원대로 키워 상장을 위한 예비심사에 들어간다는 목표”라고 말했다. 계획대로 잘 진행되면 식삶은 한국 증권시장에 상장하는 첫 온라인 식자재몰이 된다.

전영선 기자 azul@joongagn.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