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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츠‘로 첫 내한 후퍼 감독 "봉준호 오스카 수상, 지지하고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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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캣츠’의 톰 후퍼 감독은 개봉 전날 언론시사회 겸 기자 간담회가 열린 23일 오전 한국에 도착했다. “크리스마스 전까지 홍보 투어 때 3개국을 돌기로 했는데 한국을 넣은 것은 전적으로 내 의지”라고 밝혔을 정도로 첫 내한에 대한 집착이 컸다. 역시 뮤지컬을 원작으로 했던 ‘레 미제라블’(2012)이 한국에서 590만 관객을 끌어들인 ‘성공의 추억’ 때문일 터다. ‘캣츠’는 국내에서 뮤지컬 관객 첫 200만을 돌파했을 정도로 원작 인지도가 높은 편이다. 이같은 기대감인지 영화는 재난 블록버스터 ‘백두산’에 이어 예매율 2위를 달리고 있다.

23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뮤지컬 영화 '캣츠' 기자간담회에서 톰 후퍼(Tom Hooper)감독이 뮤지컬 배우 옥주현(왼쪽)과 하트를 그리고 있다. [뉴스1]

23일 오후 서울 용산CGV에서 열린 뮤지컬 영화 '캣츠' 기자간담회에서 톰 후퍼(Tom Hooper)감독이 뮤지컬 배우 옥주현(왼쪽)과 하트를 그리고 있다. [뉴스1]

이날 언론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캣츠’는 이 같은 기대감을 ‘고양이 눈높이’로 낮출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극사실주의적인 분장과 고양이를 쏙 빼닮은 낮은 포복, 잘 맞는 타이즈처럼 몸에 달라붙은 안무와 연기력을 탓할 것은 없다. 뮤직비디오를 방불케 하는 화려한 카메라워크와 어린이 시점에서 올려다 본 듯 거대하게 느껴지는 이질적인 세상은 뮤지컬과 다른 영화적인 시각특수효과(VFX)의 재미를 줬다.

"홍보 투어 3개국에 내가 한국 포함시켜" #'레 미제라블' 흥행 성공에 감사 뜻 밝혀 #퍼포먼스 화려…"성장담으로 봐주었으면"

극사실주의적 표현… 현란하지만 산만 

하지만 이는 관객의 상상력을 환상으로 끌어올리기보다 배우들의 몸짓을 왜소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다수의 캐릭터가 안무의 향연을 펼치는 뮤지컬 무대와 달리 카메라가 인물을 분산시켜 훑는 방식도 극 몰입에 방해가 됐다. 지혜로운 늙은 고양이 듀터러노미(주디 덴치)나 테일러 스위프트가 연기한 팝스타풍의 봄발루리나가 등장할 때처럼 집중력을 살릴 때만 캐릭터가 돋보였다. “드라마 위주였던 ‘레 미제라블’과 달리 퍼포먼스 위주인 ‘캣츠’의 특성을 살리려 했다”는 감독의 의도가 영화라는 특성에 녹아들지 못한 듯했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톰 후퍼 감독의 영화 '캣츠'.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톰 후퍼 감독의 영화 '캣츠'.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양복 차림으로 환하게 웃으며 등장한 후퍼 감독은 한국 관객에 대한 애정을 거듭 밝히며 분위기 반전을 노렸다. “‘레 미제라블’ 당시 한국에 왔던 휴 잭맨(장발장 역)이 멋진 나라라고 자랑해서 꼭 오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이번 오스카(아카데미)의 쇼트리스트(예비후보명단)에 오른 것을 거론하면서 “나도 투표권을 가진 사람으로서 봉 감독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올드보이’의 박찬욱 감독을 영화의 장인(master)이라고 칭하기도 했다. 다음은 주요 일문일답.

"퍼포먼스 위주 뮤지컬에 주목해달라" 

‘레 미제라블’로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았고 ‘캣츠’로 처음 내한했는데 두 작품 모두 뮤지컬 원작이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든다면.

“‘레 미제라블’에 대한 한국 관객의 열광적인 반응이 너무 뜨겁고. 놀라웠다. 한국이 열정적인 나라라서 잘 맞았고 혁명이라는 주제 역시 좋은 효과를 낳았다. ‘캣츠’는 퍼포먼스 위주 뮤지컬이라 ‘레 미제라블’과 매우 다르다. 물론 제니퍼 허드슨(그리자벨라 역)처럼 중심에서 감정을 보여주는 캐릭터도 있고 용서와 관용, 친절이라는 테마도 비슷하게 관통한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잘 어울리는 주제라고 생각한다.”

뮤지컬을 또다시 영화화했는데.  

“이번엔 무엇보다 원작에 충실하고자 했다. 뮤지컬 ‘캣츠’를 처음 본 건 내가 8살이던 1981년 뉴런던 극장에서였다. 부모님께 오디오 카세트 사자고 해서 닳도록 음악을 들었다. 그 경험이 너무 강렬했고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 아이들 뿐 아니라 가족 단위로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 뮤지컬을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대에게 마법 같은 경험을 전달하고자 했다. 한국 관객이 특히 음악을 사랑하는데 이 영화에서 음악적인 퍼포먼스를 기대할 수 있을 거다.”

뮤지컬 영화로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빅토르 위고 원작의 ‘레 미제라블’은 (소설에) 디테일이 풍부했지만 T.S. 엘리어트의 시에 바탕한 ‘캣츠’는 스토리라인을 강화하는 게 도전적인 부분이었다. 뛰어난 캐스트와 노래, 안무에다가 코미디적인 부분을 살리고 엮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게다가 뮤지컬은 한 개의 무대에서 사건이 일어나는데 영화에선 이를 여러 배경으로 옮겨야 했다. 이런 점에서 일부 세트장은 내가 나고 자란 도시인 런던에 바치는 연애편지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톰 후퍼 감독의 영화 '캣츠'.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뮤지컬을 원작으로 한 톰 후퍼 감독의 영화 '캣츠'. [사진 유니버설 픽쳐스]

 "무리 속에 정체성 찾아가는 성장담"

한국 관객은 음악 영화를 좋아하면서도 강력한 스토리라인을 즐긴다. 새로운 관객들이 보기엔 진입 장벽이 있을 듯한데 관전 포인트는?

“일단 퍼포먼스 위주이고 그게 이끌어가는 영화라는 걸 알고 가면 좋다. 뮤지컬과 달리 중심 인물인 빅토리아(프란체스카 헤이워드)는 초반에 사람으로부터 버려진 고양이다. 익숙하지 않은 무리들 속에서 자기 정체성,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성장담이다. 다양한 성향을 가진 고양이들, 예컨대 럼 텀 터거(제이슨 데룰로)는 이성에 대한 본능이 강한데 그런 이들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하는 과정 말이다. 참고로 헤이워드는 로얄발레단 수석무용수인데 그의 눈으로 여정을 함께 하면 매우 즐거울 것이다. 또한 영화에선 맥캐버티(이드리스 엘바)에게 존재감을 많이 부여했는데 배우의 팬으로서 그가 맡아줘서 기뻤다.”

‘캣츠’는 지난 20일 영미권에서 먼저 개봉됐고 해외 비평 웹사이트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 점수가 18%로 낮은 편이다. 후퍼 감독은 “영화리뷰를 잘 안 읽지만 파이낸셜 타임스나 데일리 메일 등에선 양 극단의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안다”면서 “고양이 캐릭터에 대한 다양한 평가일텐데, 새로운 시도를 한 것이니 새로운 청중이 마술적 여정을 함께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톰 후퍼(Tom Hooper) 감독이 23일 뮤지컬 영화 '캣츠' 내한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옥주현으로부터 한글 이름이 적힌 모자를 선물 받고 미소를 짓고 있다. 뉴스1

톰 후퍼(Tom Hooper) 감독이 23일 뮤지컬 영화 '캣츠' 내한 공식 기자간담회에서 옥주현으로부터 한글 이름이 적힌 모자를 선물 받고 미소를 짓고 있다. 뉴스1

이날 기자 간담회 말미엔 걸그룹 ‘핑클’ 출신의 베테랑 뮤지컬 배우 옥주현이 등장했다. 후퍼 감독은 “옥주현이 테마곡인 ‘메모리’를 부르는 영상을 봤는데 영혼을 담은 공연, 믿을 수 없이 아름다운 노래였다”면서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홍보영상 커버송을 허락한 게 옥주현이었다”고 소개했다.

왕년에는 매혹적이었지만 지금은 늙어서 추한, 사연 많은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부르는 ‘메모리’는 뮤지컬 ‘캣츠’의 백미로 꼽히며 한번도 안 본 이들까지 널리 아는 대표곡. 그럼에도 영화에선 이 노래를 부를 때 그리자벨라의 스산한 신세와 환생에 대한 열망이 표피적으로 느껴지는 건 아이러니한 일이다. ‘드림걸즈’(2007)로 79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탄 허드슨의 열창이 옥주현만 못할 리 없는데도 말이다. 후퍼 감독은 봉 감독의 수상을 바란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정작 '캣츠'는 ‘킹스 스피치’(2011)가 안긴 아카데미 감독상의 영광을 재현하기 어려워 보인다. 24일 개봉.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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