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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 영아 사체 옮긴후 야동 봤다" 워킹맘 판사 울분의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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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7개월 여자아이를 아파트에 반려견 2마리와 함께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부모 A(21·왼쪽)씨와 B(18)양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사진은 지난 6월 7일 피고인들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려 인천지방법원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생후 7개월 여자아이를 아파트에 반려견 2마리와 함께 방치해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부모 A(21·왼쪽)씨와 B(18)양에게 법원이 중형을 선고했다. 사진은 지난 6월 7일 피고인들이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으려 인천지방법원으로 향하는 모습. [연합뉴스]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힘없고 연약하며 아무런 죄가 없는 피해자에게 돌리고 말았다"

7개월 영아 굶어죽인 부부 선고한 판결문 살펴보니 #"미움과 분노를 연약하고 죄없는 피해자에게 돌려" #송현경 재판장, 두 아이 키우는 워킹맘 판사

지난 19일 7개월 영아를 굶겨 죽이고 사체를 유기한 어린 부모 A(21)씨와 B(18)씨에게 각각 20년과 15년형(단기 7년)을 선고한 송현경 부장판사(44·연수원 29기)가 판결문에 적은 문장이다.

울분 담은듯한 양형이유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인 송 부장판사는 이 부부에게 중형을 선고하며 울분을 담은듯 양형이유를 써내려갔다.

피고인 부부는 "살인의 고의가 없었고 피해자의 사체를 유기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송 부장판사는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송 부장판사는 아이의 아빠였던 A씨에 대해선 "자신의 행위로 피해자가 사망한 것에 대해 죄책감 또는 진지한 반성이 있는지 도저히 알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영아 사체 옮기고 야동 접속

송 부장판사의 양형이유에는 언론 보도엔 드러나지 않았던 A씨의 행동들이 비교적 상세히 기재돼있다. 그중엔 A씨가 영아의 사체를 종이 상자에 옮겨 담은 직후의 행동도 적혀있다.

아이를 방치한 뒤 B양은 지인들과 여러차례 술자리를 가졌다. [사진 B양 페이스북 캡처]

아이를 방치한 뒤 B양은 지인들과 여러차례 술자리를 가졌다. [사진 B양 페이스북 캡처]

송 부장판사는 수사기록을 토대로 "A씨가 사체를 옮겨 담은 직후인 음란동영상(야동)과 만화(웹툰)를 시청할 수 있는 브라우저에 접속하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A씨가 수사 과정에서 했던 거짓말들도 함께 열거했다.

A씨는 수사 과정에서 객관적 증거가 제시되기 전까지 "기억나지 않는다""모른다"는 답변으로 일관했다고 한다. 송 부장판사는 A씨에게 어떠한 반성의 이유도 찾기 어렵다는 듯 A씨의 양형에 대한 유리한 참작사유를 판결문에 기재하지 않았다.

송 부장판사는 또 피고인들이 "영아의 조부모가 마련한 장례식에도 술을 먹고 늦잠을 자느라 참석하지 않았다"고 질타했다.

따뜻한 보살핌 못받았다 해도

송 부장판사는 사건 기록에서 피고인 부부가 그 부모들로부터 "따뜻한 보살핌을 온전히 다 받지 못한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닌지 의심할만한 사정도 나타난다"고 했지만 "피고인들이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피고인들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아이의 아버지 A씨는 검찰조사에서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아이의 아버지 A씨는 검찰조사에서 자신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송 부장판사는 "피고인들 사이의 갈등이 커지고 서로에게 크게 실망하며 서로에 대한 분노를 힘없고 연약하며 아무런 죄가 없는 피해자에게 돌려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판시했다.

판결문에는 피고인들이 "사람이 물과 음식 없이는 3일을 버틸 수 없음을 안다"고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도 담겨있었다.

송 부장판사는 "피해자에게 3일 넘게 물 한 모금 먹이지 않은 행위는 직접 피해자를 죽이는 법익 침해와 동등한 형벌의 가치가 있다"며 피고인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한 이유를 밝혔다.

애완견에 물렸던 영아 

판결문에는 피해자인 7개월 된 영아가 5일간 애완견 두 마리가 있는 집에 홀로 방치돼 고도의 탈수 및 기아로 사망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 그 과정에서 영아는 애완견에 의해 얼굴과 머리, 팔 다리 등이 심하게 긁히는 상처를 입었지만 피고인들은 이 사실을 알고도 방치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영아가 머물렀던 방은 애완견의 배설물과 각종 쓰레기로 일반 성인도 잠을 잘 수 없을만큼 지저분했었다.

송 부장판사는 이 모든 정황을 피고인들에 대한 가중요소(잔혹한 범행수법)로 고려했다. 단 아직 10대인 B씨의 경우 미성년자임을 감안해 소년범 형량을 기준으로 장기 15년에 단기 7년을 선고했다. B씨는 7년을 복역한 뒤 교화 여부에 따라 출소가 가능하다.

인천지방법원 전경. [심석용 기자]

인천지방법원 전경. [심석용 기자]

전형적 워킹맘 판사 

송 부장판사의 한 동료 판사는 송 부장판사를 "전형적인 워킹맘 판사"라고 말했다. 송 부장판사는 올해 초 인천지방법원으로 발령이 난 뒤에도 모두가 꺼려하는 형사합의부 재판장도 자원했다고 한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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