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코 등 석유회사 힘 세져, OPEC 위력 갈수록 약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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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호 15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내년이면 설립 70년이 된다. 이를 기념이라도 하려는 건지, 러시아와 손잡고 추가 감산에 나선다. 내년 1월 1일부터 하루 생산량을 50만 배럴 더 줄이기로 했다.

줄리아노 가라비니 로마트레대 교수 #산유국 정부, 유가 안정 원하지만 #토착 석유사들은 생산·수출 늘려 #OPEC 감산 합의 지키기 힘들 것

줄리아노 가라비니 교수

줄리아노 가라비니 교수

흥미로운 반전이다. OPEC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약 20년 정도 무기력했다. 감산 합의도 쉽지 않았다. 합의가 이뤄졌어도 서로 지키지 않았다. 이번은 다르다. 2016년 감산 합의 이후부턴 3년 정도 약속을 잘 지키고 있다. 러시아 등까지 참여한 ‘OPEC+ 합의’인데도 파열음이 들리지 않는다. OPEC의 부활인가?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OPEC 역사가인 줄리아노 가라비니(사진) 로마트레대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올 9월 『20세기 OPEC의 흥망(The Rise and Fall of OPEC in the Twentieth Century)』을 출간했다. 석유 관련 두 번째 책이다.

OPEC이 설립 70년을 맞는다. 카르텔(cartel) 치곤 수명이 길다.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 노력 때문인가.
“재미있는 사실 하나 말해줄까. 사우디가 앞장서 OPEC을 조직하지 않았다. 남미의 베네수엘라가 주도했다. 베네수엘라는 산유국 가운데 원유 수출을 가장 먼저 본격화했다. 국제유가 안정이 곧 국익인 나라였다. 베네수엘라가 사우디 등 중동 국가를 끈질기게 설득해 1960년 OPEC을 탄생시켰다.”

내년부터 하루 50만 배럴 더 감산

한국 등 원유 수입국 국민들에겐 OPEC은 ‘검은(원유) 권력’으로 비친다.
“하하! 유럽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OPEC의 힘이 막강하지도 않았다. 전성기는 아주 짧았다. 1980년대 초 2~3년간이었다.”
그래서 책 제목을 『20세기 OPEC의 흥망』이라고 정했나.
“OPEC이 흥한 시기가 너무 짧았다. 등장과 몰락이라고 해야 할듯하다.”
왜 OPEC이 카르텔 구실을 못 했을까.
“OPEC이 약속을 깬 회원국을 징계할 권한이나 힘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런 접근법으론 원인을 제대로 발견할 수 없다. 한걸음 더 들어가야 한다. 회원국 내부에 놀라운 역동성이 존재한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어떤 역동성인가.
“OPEC 회원국은 외국계가 아닌 토착 석유회사(NPC)를 모두 갖고 있다. 사우디의 아람코가 대표적인 예다. NPC의 이해관계는 정부나 왕실과 다르다. 정부나 왕실은 가격 안정을 원하지만, NPC 경영자는 가능한 한 많이 생산해 많이 수출하고 싶어한다. 1990년대 OPEC이 감산을 결정했는데도, NPC들은 원유 채굴과 수출을 늘렸다.”
정부나 왕실이 NPC 하나 통제하지 못하나.
“사우디 등이 서방 석유회사들한테서 유전을 회수한 초기에는 직접 통제가 가능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회원국 내부의 원유 생산과 수송, 정제, 화학 부문 등에서 민간 기업 힘이 세졌다. NPC가 정부나 왕실 통제에서 서서히 벗어난 이유다.”

70주년 맞은 OPEC, 흥한 시기 짧아

OPEC 내부의 역동성만 문제였을까. 미국의 원유 생산과 수출 등 외부 요인도 중요하게 구실했을 듯하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미국 내부도 살펴봐야 한다. 주별로 이해관계가 다르다. 텍사스 등 원유 생산지는 고유가를 원한다. 반면, 산업지대와 대도시는 저유가를 좋아한다. 미국의 원유 생산과 수출 정책의 변화엔 주별 이해관계가 작용해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산업지대의 이익을 대변한다. 미국 원유 생산과 수출이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OPEC이 러시아 등과 동맹을 맺고 유지하고 있다.
“러시아는 2000년 초까지 OPEC과 거리를 뒀다. 이런 러시아가 OPEC과 손 잡았다. OPEC이 러시아가 거절하기 힘든 조건을 제시해서다. 감산분의 대부분을 OPEC 회원국이 떠안는 조건이다. 러시아 감산 규모는 크지 않다. OPEC이 태도를 바꿔 더 많은 감산을 러시아에 요구하면 상황이 돌변할 수 있다. OPEC+가 깨질 수 있다.”
OPEC의 미래가 궁금하다.
“최근 아람코가 기업공개(IPO)를 했다. 다른 회원국 NPC도 IPO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해외 투자자들이 아람코 주식을 많이 사지 않았다고 꼬집는 보도를 봤다. 이 말을 뒤집으면 사우디 민간 자본력이 아람코 IPO를 감당할 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아람코 등 NPC에 대한 산유국 정부나 왕실의 장악력이 더욱 약해질 수 있다는 얘기다. OPEC+ 감산 합의가 지켜지기 힘든 조건이 무르익고 있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줄리아노 가라비니 이탈리아 로마 라스피엔차대학에서 역사를 공부하기 시작해 플로렌스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탈리아 로마트레대와 미국 뉴욕대학(아부다비) 등에서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중심으로 석유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20세기 OPEC의 흥망』뿐 아니라 『오일쇼크(Oil Shock: The 1973 Crisis and its Economic Legacy)』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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