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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트럼프 하원 탄핵, 우리 정권도 타산지석 삼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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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19일(한국시간) 미 하원을 통과했다. 권력 남용과 의회 방해라는 두 가지 의혹으로 상정된 탄핵안은 각각 과반(216표)을 넘는 230, 229표를 얻어 여유있게 가결됐다. 이로써 트럼프 대통령은 1868년 앤드루 존슨, 1998년 빌 클린턴에 이어 세 번째로 하원에서 탄핵이 가결된 대통령이란 불명예를 안게 됐다. 여당인 공화당이 우세한 상원에서는 탄핵안이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내년 1월 개시될 상원의 탄핵 재판 과정에서 트럼프에게 쫓겨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핵심 증인들이 폭탄 발언을 할 경우 공화당 의원들이 트럼프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미 재적의원이 431명에 달하는 미 하원에서 탄핵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트럼프의 체면은 땅에 떨어진 형국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된 핵심 이유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4억 달러 군사 원조를 대가로 정적인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리 조사를 종용했다는 의혹이다. 나라의 외교 예산을 대통령 개인의 정치적 이득을 노린 거래에 전용하려 한 점에서 권력 남용의 전형이 아닐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우크라이나 스캔들’과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라는 미 의회의 요구를 묵살하고, 스캔들에 연루된 공직자들에게 “조사에 협조하지 말라”고 종용했다는 혐의다.

국정 최고 책임자의 비위를 파헤쳐 견제하는 의회의 핵심 권한을 부인한 점에서 트럼프는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을 정면으로 훼손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또 트럼프는 국가 예산을 정해진 용도에 맞지 않게 남용했고, 불법을 저지른 측근들의 사면을 시도했다. 나아가 자신을 비판하는 보도에 대해 트위터에 600번 넘게 ‘가짜뉴스’란 말을 올려 언론 자유 훼손에 앞장섰다. 트럼프 지지층조차 이런 ‘선출직 독재’적 행태는 명백한 잘못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미국 대통령 못지않게 권한이 강해 ‘제왕적 대통령제’란 지적을 받아 온 우리 정권도 이를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 대통령은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취임 뒤 2~3년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다 임기 말 국정 실패와 측근 비리로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하고, 퇴임 후엔 본인이나 친인척이 수사를 받는 불행을 반복해 왔다. 헌법에 명시된 의회·법원·사법기관의 대통령 권력 견제 기능만 제대로 보장됐어도 막을 수 있는 비극이었다. 현 정권은 미 하원의 트럼프 탄핵 사태를 직시하면서 ‘견제와 균형’이란 헌법의 핵심 가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배전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