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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건 떠나자마자…미사일 발사 신호 잡는 美정찰기 또 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난 13일 이후 한반도 상공에서 공개 활동을 벌이지 않던 미국 정찰기가 엿새 만에 존재를 드러냈다. 대북 대화 메시지를 들고 방한한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한국을 떠나자 기다렸다는 듯 대북 공개 정찰을 재개한 것이다.

19일 민간 항공전문사이트 에어크래프트 스폿에 따르면 이날 오후 미 해군 정찰기인 EP-3E가 한반도 상공 2만5000ft(7.62㎞)에서 작전을 펼쳤다. EP-3E는 전파 정보(엘린트) 수집에 특화된 정찰기로 미사일 발사 전후 방출되는 전자신호와 핵실험 때의 전자기 방사선 신호를 포착한다. 최근 북한이 진행한 엔진 관련 시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징후를 염두에 두고 비행을 했다는 의미다.

미 정찰자산

미 정찰자산

이날 EP-3E는 위치발신장치(ADS-B)를 켜고 의도적으로 활동을 노출했다. 앞서 미 정찰기가 한반도 상공에서 공개 정찰을 벌인 건 지난 13일 RC-135S(코브라 볼)가 마지막이었다. 전 세계에서 미군만 3대를 운용하는 코브라 볼은 미 핵심 정찰자산으로 고성능 전자·광학 장비를 갖추고 있어 탄도미사일의 전자 신호와 궤적을 추적하는 데 특화돼 있다. 당시 코브라 볼은 일본 오키나와의 가데나 미군 공군기지에서 이륙해 동해로 향했다. 이날 북한은 동창리 서해 위성발사장에서 2차 ‘중대한 시험’을 실시했다. 북한의 관련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코브라 볼이 사전 탐색에 나섰다는 게 군 안팎의 중론이다.

이밖에도 미국은 지난 11월 말부터 꾸준히 핵심 정찰기를 한반도에 띄워 대북 공개 감시에 나섰다. 지난 11일 RC-135W(리벳 조인트)와 고고도 무인정찰기인 글로벌호크, 10일에는 E-8C 조인트스타즈(JSTARS) 등이 한반도 상공에서 작전을 펼쳤다. RC-135U(컴뱃 센트), EO-5C(크레이지 호크)도 모습을 드러냈다. 이들 정찰기 모두 북한 내 이동식발사차량(TEL)과 야전군의 움직임 등을 포착하는 용도로 활용된다. 미국이 북한을 정찰하는 동시에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대북 경고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해석됐다.

활발하던 미 정찰기의 한반도 공개 작전은 지난 14일부터 자취를 감췄다. 이를 놓고 군 안팎에선 비건 대표의 15~17일 방한 기간이 고려된 조치라는 얘기가 나왔다. 대북 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최대한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도 아니냐는 것이다. 박정천 북한군 총참모장은 14일 담화에서 “첨예한 대결 상황 속에서 미국을 비롯한 적대세력들은 우리를 자극하는 그 어떤 언행도 삼가해야 연말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후 지난 16일 비건 대표는 공개 브리핑에서 북한을 향해 “우리는 여기 와있고 당신들은 접촉 방법을 알 것”이라고 대화를 제안했다.

하지만 북한의 묵묵부답으로 결국 비건 대표는 빈손으로 지난 17일 출국했다. 이후 일본 도쿄로 향한 비건 대표는 19일부터 1박2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이날 EP-3E가 나타난 것도 다시 시작된 미국의 대북 압박 기조와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군 관계자는 “그동안 위치발신기를 켜지 않았을 뿐 미 정찰기의 활동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며 “대북 경고 등의 의도를 보이기 위해 6일 만에 위치발신기를 켠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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