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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폭 가해자? 공익 제보자?…'편향교육 의혹' 인헌고 논란 2라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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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23일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앞에서 열린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 소속 학생들의 기자회견에 많은 보수단체 회원 및 보수 유튜버들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0월 23일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앞에서 열린 '인헌고등학교 학생수호연합' 소속 학생들의 기자회견에 많은 보수단체 회원 및 보수 유튜버들이 기자회견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일부 교사들의 ‘정치 편향 교육' 의혹을 제기한 서울 인헌고 3학년 최모(18)군이 최근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로부터 가해자로 판정돼 징계를 받았다. “다른 학생들의 인권을 침해했다”는 학교 학폭위의 결정에, 최군은 “공익 제보에 대한 입 틀어막기”라고 반발하고 있다. 정치 편향 교육 논란으로 시작된 인헌고 사태가 학교폭력 논란으로 번졌다.

17일 인헌고와 학생수호연합 등에 따르면 최군은 지난 10일 열린 이 학교 학폭위에서 서면사과와 사회봉사 15시간, 특별교육 5시간의 조치를 받았다. 특별교육엔 최군의 부모도 대상이 된다.

최군이 일부 교사의 '정치편향 교육' 의혹을 제기하는 과정에서 동영상을 공개했는데, 여기 등장하는 여학생들이 최군을 ‘명예훼손’으로 신고하면서 학폭위가 개최됐다. 학폭위는 조치 이유에 대해 “최군이 해당 동영상과 사진을 통해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되기를 꺼리는 개인의 의사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았다.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정신적 피해를 유발했다”고 밝혔다.

학생수호연합이 16일 SNS에 공개한 학폭위 조치결과 통지서.

학생수호연합이 16일 SNS에 공개한 학폭위 조치결과 통지서.

문제가 된 건 최군이 지난 10월 18일 자신의 SNS에 올린 인헌고 마라톤 행사 동영상이다. 반일 구호를 외치는 인헌고 학생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학생의 얼굴은 모자이크 처리됐지만, 학생들의 대화 내용은 여과 없이 노출돼 이름 등이 나온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여학생 2명이 최군에게 “동영상을 내려달라”고 요청했지만, 최군은 “모자이크 처리돼 있어 괜찮다”며 들어주지 않았다.

최군의 동영상을 통해 인헌고의 정치 편향 논란이 불거졌고, 보수 성향 유튜버와 보수단체 회원들이 학교 앞에서 집회를 열었다.

학교 관계자는 “당시 등‧하교 하는 학생들을 향해 ‘홍위병’ ‘빨갱이’라고 부르거나 위협적인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름이 공개된 여학생들로서는 두려움을 호소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최군이 지난 10월 18일 자신의 SNS에 올린 인헌고 마라톤 행사 동영상 캡처.

최군이 지난 10월 18일 자신의 SNS에 올린 인헌고 마라톤 행사 동영상 캡처.

최군 측은 학폭위 처분이 부당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영상에 등장한 학생들의 얼굴 모두 모자이크 처리해 있어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가 공익제보자에게 가해자 프레임을 씌웠다”고도 주장했다. 최군은 “영상을 찍어 올렸을 뿐인데 이런 결과가 나와서 어이가 없다”며 “특히 부모님에게까지 책임을 묻는 것 같아 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군 측 변호인인 장달영 변호사는 “학폭위에서 음성변조를 요청했고, 이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는데도 징계 처분이 나왔다. 최군을 본보기로 삼아 1~2학년 학생들이 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못 하도록 막으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군 측은 학폭위 결과에 불복해 행정소송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8일 오후 학폭위를 비판하는 기자회견도 개최할 예정이다. 10일 학폭위 개최에 앞서 장 변호사와 최군의 부모는 “해당 학폭위 신고 사안이 부적절하다”는 의견서를 냈다.

학교 측은 학폭위의 조치가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학교 관계자는 “학폭위는 절반 이상이 학부모로 구성됐다. 동영상에 피해 학생들의 이름이 실명으로 나오고 있고, 맥락상 여학생들이 사상주입 당한 것처럼 묘사된 것도 문제라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학교 관계자는 “최군이 소송을 제기할 경우 학교도 적극 대응할 방침”이라고도 밝혔다. “최군의 주장이 잘못됐다는 증거가 있지만, 학생 차원에서 미공개하고 있다”고도 밝혔다.

지난 10월 23일 몇몇 교사로부터 편향된 정치 사상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앙포토]

지난 10월 23일 몇몇 교사로부터 편향된 정치 사상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중앙포토]

한편 이날 오후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중구 프레지던트호텔에서 ‘서울교원 원탁토론회’를 연다. 인헌고 사건을 계기로 학교 수업 등에서 정치·사회적 현안을 다룰 때 지켜야 할 원칙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이날 전교조 서울지부와 좋은교사운동, 서울교사노조, 서울실천교사모임 등 진보 성향 교원단체들이 참여한다. 토론회 진행은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이 이사장으로 있는 사단법인 징검다리교육공동체가 맡는다.

하지만 보수 성향인 서울교총은 토론회 참여를 거절했다. 사회현안을 가르칠 때 교사의 정치적 성향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 이 같은 논의가 시기상조라는 입장 때문이다. 또 진보성향 단체들이 주축이 돼 제대로 된 토론이 이뤄지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서울교총 관계자는 “인헌고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런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정치편향 교육을 한 교사에 대해 엄중한 문책과 단호한 조치를 내리는 게 우선”이라고 지적했다.

전민희‧박형수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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