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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명 사상자 낸 ‘밀양 참사’ 세종병원 이사장 징역 8년 확정

중앙일보

입력

159명의 사상자를 낸 밀양 세종병원 참사의 책임자인 세종병원 이사장 손모(56)씨에 대한 징역형이 확정됐다.

세종병원 [중앙일보]

세종병원 [중앙일보]

대법원 제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업무상 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기소된 병원 법인 이사장 손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무리한 증·개축, 허술한 대처가 낳은 인재(人災)

2018년 1월 26일 경남 밀양에 위치한 세종병원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이 화재로 47명이 목숨을 잃고 112명이 부상을 입었다. 참사의 희생자는 40대인 1명을 빼고는 대부분 80·90대 고령자였다.

2018년 1월 26일 경남 밀양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을 잇는 통로 위쪽에 화재 당시 연기 통로 역할을 한 비 가림막이 보인다. [중앙일보]

2018년 1월 26일 경남 밀양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을 잇는 통로 위쪽에 화재 당시 연기 통로 역할을 한 비 가림막이 보인다. [중앙일보]

세종병원 화재는 10년 넘게 저질러진 불법 증축과 이를 제대로 단속하지 않은 당국이 함께 만들어낸 인재였다. 1992년부터 2005년까지 반복적으로 증축이 이뤄진 노후 건물은 화재에 대비한 스프링클러나 방화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상태였다. 특히 불법건축물로 적발돼 밀양시청으로부터 이행강제금까지 부과받은 비가림막은 유독가스가 외부로 제대로 배출되지 못하게 만들어 피해를 키웠다. 실제로 불이 시작된 지점도 불법 증축된 응급실 탕비실 천장이었다.

인력 부족도 문제였다. 화재 당시 세종병원에 근무하던 상근 인력은 의사 3명과 간호사 6명에 불과했다. 환자 수를 기준으로 의료법상 필수 인력은 의사 6명, 간호사 35명이었다.

당국의 허술한 대처는 더 큰 문제였다. 보건소는 해마다 세종병원에 대한 점검을 벌였지만 이상한 점을 찾아내지 못했다. 심지어 보건소 직원 2명은 2012년 세종병원이 제 기능을 못 하는 중고 발전기를 불법으로 설치했는데도 아무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부 “이사장 큰 인명피해 낸 책임 무거워”

법원은 참사의 책임을 의료법인 효성의료재단 이사장인 손씨에게 물었다. 손씨는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의 소방·전기 안전, 시설 관리, 의료인 고용·배치 등 경영 전반을 총괄했다.

손씨는 또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약 407억원에 달하는 요양급여비용을 편취한 혐의도 받았다. 의료인이 아니면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음에도 의료인 명의를 빌려 10년 동안 세종병원과 세종요양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며 받은 것이다.

1·2심 재판부 모두 손씨가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면서 소방계획을 제대로 세우거나 훈련을 하지 않아 큰 인명피해를 낸 책임이 무겁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사망한 피해자들의 가족들은 제대로 인사도 나누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가족을 잃게 되는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됐다”고 덧붙였다.

도시 전체가 추모 분위기에 휩싸인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로 밀양 시내 곳곳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도시 전체가 추모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중앙일보]

도시 전체가 추모 분위기에 휩싸인 밀양시 세종병원 화재로 밀양 시내 곳곳에 희생자를 애도하는 플래카드가 내걸려 도시 전체가 추모 분위기에 휩싸여 있다. [중앙일보]

이어 비의료인이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국민건강상의 위험을 초래하며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재정건전성까지 해쳐 궁극적으로 국민에게 피해를 입힌다는 점에서 엄히 처벌할 필요가 있다”며 손씨에게 징역 8년을 선고했다. 대법원도 이를 확정했다.

병원 관계자들과 공무원들에겐 벌금형 선고

한편 2심 재판부는 세종병원 병원장 석모(54)씨에 대해서는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석씨가 환자들을 신체보호대로 묶게 해 구조를 어렵게 한 혐의(과실치사상)를 무죄로 판단했기 때문이다.

2심 재판부는 구조과정에서 소방관들이 신체보호대 매듭을 풀기 위해 시간이 지체된 것이 구조 지연과 인과관계가 있었다고 볼 수 없고 화재 발생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고 판단했다. 이어 “석씨에게 신체보호대 관련 주의의무 위반이 있다고 하더라도 화재로 인한 사상자들의 피해 원인이 됐다고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석씨가 허가를 받지 않고 고용된 ‘대진 의사’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처방전을 작성하게 한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다.

2018년 1월 26일 오전 7시30분쯤 경남 밀양 세종병원 응급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 경남지방경찰청]

2018년 1월 26일 오전 7시30분쯤 경남 밀양 세종병원 응급실에서 화재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화재를 진압하고 있다. [사진 경남지방경찰청]

2명의 보건소 직원에 대해서는 각각 벌금 1500만원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공무원으로서 원칙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여야 함에도 안전점검을 실시함에 있어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세종병원 측의 설명만 믿고 마치 현장을 직접 확인한 것처럼 허위의 공문서를 작성·행사한 것으로 그 사안이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대법원도 “법리를 오인한 잘못이 없다”며 원심을 확정했다.

백희연 기자 baek.heeyo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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