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시인 김신용·이기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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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상에는 비가 오는지/호명하는 포주의 된 음성이 처벅처벅 감겨온다/…/아다라시 김양이 두탕째 흠씬 뛰는 동안/조마조마하게도 나는 아직 아니다"('영자야 21-대기실' 부분)

월간 시 전문지 '현대시' 9월호가 '이달의 시인'으로 선정한 이기와(34)씨의 시편들은 거칠고 적나라한 언어들로 가득차 있다. 원색적인 이씨의 시어들은 파란 많았던 이씨의 인생 역정, 극단적인 밑바닥 체험의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계부에게 수시로 손찌검을 당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왼쪽 눈이 시력을 잃기 시작해 지금은 명암만 구분할 수 있을 뿐"이라고 밝힌 이씨는 중학교 시절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론 천애고아처럼 혼자서 지내야 했다. 공장일과 레스토랑 서빙, 요정 아가씨들의 뒷수발, 단란주점 월급마담, 포장마차.민속주점.미장원 경영 등이 생존을 위해 이씨가 거쳤던 직업들이다.

포장마차를 꾸려가던 1990년대 중반 이씨는 한없이 공허해져 우연히 시집을 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시가 쓰고 싶어졌다. 당시 이씨의 눈길을 붙들어 맸던 시가 김신용(58) 시인의 작품이었다. 남대문의 지게꾼 등 역시 밑바닥 삶을 전전하던 김씨는 '개같은 날들의 기록' 같은 시집에서 이씨라면 숨기고 싶었을, 스스로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후 김씨는 이씨가 자신의 체험을 시로 다룰 수 있도록 용기를 북돋워준 먼발치의 스승이자 선배가 됐다.

두 사람은 이씨가 9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하고 2001년 첫 시집 '바람난 세상과의 블루스'를 내고도 꽤 시간이 흐른 지난해 말 처음으로 대면했다. 인사동 술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다.

서로의 시 세계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던 터라 첫눈에 '동류'임을 확인한 두 사람은 이후 둘도 없는 문단 선후배가 됐다. 이들은 한달에 서너차례 만나 인생과 문학을 얘기한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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