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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진열장 마련한 이정후의 훈훈한 겨울

중앙일보

입력

2019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외야수부문 수상의 영광을 누린 키움 이정후. [뉴스1]

2019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외야수부문 수상의 영광을 누린 키움 이정후. [뉴스1]

아버지의 트로피와 메달을 보며 아들은 훌륭한 야구선수를 꿈꿨다. 그리고 이제 아들은 아버지를 뛰어넘는 꿈을 꾼다. ‘바람의 아들’ 이종범 코치의 아들 이정후(21·키움 히어로즈) 이야기다.

이정후는 2019년 상복이 터졌다. 국가대표로 발탁돼 출전한 프리미어12에선 준우승 메달과 함께 베스트11으로 선정됐다. 시즌 뒤에도 골든글러브(외야수 부문), 조아제약 야구대상 조아바이톤상, 일구상 최고타자상 등을 수상했다. 골든글러브는 2년 연속 수상이다.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만난 이정후는 "나는 별로 안 된다. 아버지는 방에 따로 진열장이 있다"고 웃었다.

이제는 '정후 아빠'가 된 이종범 코치는 현역 시절 최고의 선수였다. 골든글러브 6회 수상, 정규시즌 및 한국시리즈 MVP 등 화려했다. 1994년엔 타율·도루·출루율·최다안타까지 4관왕에 오른 적도 있다. 각종 국제대회에서 받은 상과 해태 시절 우승 반지까지 합치면 어마어마하다. 이정후가 아버지도 받지못한 신인왕(2017년)을 받긴 했지만 아직 아버지의 발자취를 쫓기엔 역부족이다. 이정후는 “아버지가 선수 시절 받았던 상과 트로피는 어머니가 진열장에 정리를 해뒀다”며 "아버지가 받으신 것들을 보며 언젠가는 야구선수가 돼서 나도 상을 받고 싶다는 마음을 키웠다"고 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코치와 선수로 함께 금메달을 따낸 이종범-이정후.[연합뉴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코치와 선수로 함께 금메달을 따낸 이종범-이정후.[연합뉴스]

'아버지를 따라잡고 싶다'는 속내도 드러냈다. 이정후는 '아버지를 언제쯤 따라잡을 것 같으냐'는 질문에 "5년 이내"이라고 답했다. 앞으로 4년 연속 수상할 경우 아버지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사상 첫 부자 두자릿수 골든글러브란 대기록도 세우게 된다. 이번 겨울엔 이정후의 진열장도 생긴다. 이정후는 “내가 받은 것들은 거실에 있었는데, 이번에 어머니가 내 전용 진열장을 산다고 했다.

데뷔 후 빠르게 성장한 이정후의 올 겨울은 더욱 따뜻할 전망이다. 프로 4년차 연봉 신기록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이정후는 2017시즌 뒤 8300만원이 인상된 1억1000만원에 계약했다. 인상률(307.4%)은 미치지 못했지만 류현진(1억원, 400% 인상)이 갖고 있던 2년차 최고 기록을 넘어섰다. 지난해 강백호(KT, 1억2000만원)가 1년만에 새기록을 썼지만 여전히 2위로 남아 있다. 2년차 징크스도 우습게 넘긴 이정후는 2018년 겨울엔 3년차 최고연봉(2억1000만원)도 달성했다. 그리고 이번엔 4년차 최고기록(종전 류현진 2억4000만원)을 깨트리는 것은 기정사실에 가깝다.

1996년 골든글러브 포토제닉상을 수상한 이종범.

1996년 골든글러브 포토제닉상을 수상한 이종범.

물론 이정후의 꿈은 거기서 그치지만은 않는다. 아직 4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긴 하지만 언젠가는 해외리그에서 뛰는 것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선배 김하성이 다음 시즌 뒤 포스팅을 통해 미국 진출을 하겠다는 선언을 한 영향도 있다. 이정후는 "아버지는 사실 시즌 중에도 자주 보지 못해서 그런지 아버지가 일본에 가시는 것(주니치 코치 계약)보다 (김)하성이 형이 내년 시즌 뒤 미국에 가는 게 더 크게 느껴질 것 같다. 늘 같이 생활애서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질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어렸을 땐 아버지가 일본에서 뛰셨기 때문에 일본에 진출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면서 "하지만 지금은 미국에 대한 생각이 더 강해졌다"고 했다. 어쩌면 트로피와 연봉은 더 큰 꿈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따라오는 '훈장'일런지도 모르겠다.

김효경 기자 kaypubb@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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