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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교육부, 수능 가채점 회피…학생들만 애먼 고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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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전민희 교육팀 기자

전민희 교육팀 기자

고3 아들을 둔 A씨는 지난 4일 자녀의 수능 성적표를 받고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주 면접을 본 대학의 수능 최저학력기준(수능 최저)을 충족하지 못해 불합격할 게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아이가 지원한 대학에 합격하려면 수능 4개 영역의 등급 합이 7이내여야 했다. 하지만 A씨 자녀는 국어에서 3등급을 받으면서 4개 영역 등급의 합이 8이 됐다.

대학별 고사의 응시 여부를 결정할 때도 고민이 많았다. 정부에서 가채점 결과를 발표하지 않아 A씨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사교육뿐인데, 업체별로 점수가 달라서다. 가장 애매한 건 84점을 받은 국어 과목이었다. 수능 최저를 맞추려면 국어에서 2등급을 받아야 하는데, 사교육업체가 발표한 2등급 컷(구분 점수) 점수가 84~86점 사이었다.

A씨는 “며칠간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다가 2등급이라는 업체가 더 많아 면접을 보게 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며 “대학별 고사가 학종보다 더 ‘깜깜이’ 같은데 정부는 왜 가만히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A씨 뿐 아니라 대다수 학생·학부모가 수능을 치른 후 면접·논술 시험 응시 여부를 두고 진을 뺀다. 대부분 대학별 고사가 수능 성적을 발표하기 전에 이뤄지기 때문이다. 수험생들은 자신의 수능점수를 모른 채 깜깜이로 시험장에 향한다. 사교육업체에서 가채점 등급별 예상 커트라인 점수를 제공하지만, 수험생들이 업체 홈페이지에 올린 점수로 통계를 낸 것이라 업체별로 점수가 제각각이고 정확도도 떨어진다.

가채점을 둘러싼 학생·학부모의 혼란을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가채점 결과를 발표하면 된다. 대학별 고사 일정을 수능 성적 발표 뒤로 미루는 것도 방법이지만, 입시 일정이 빡빡해지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하지만 가채점은 교육부가 결단만 내리면 된다. 사교육업계에서도 “정부에서는 3일이면 가채점이 가능하다”고 한다.

문제는 교육부가 이를 해결할 의지가 없다는 점이다. 지난 2017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가채점을 도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는데, 교육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지난 2002년과 2003년에 가채점 결과를 발표했다가 실제 채점 결과와 차이가 크다는 이유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기 때문이다. 교육계에서는 “교육부가 고생해서 가채점 결과를 내놔봐야 ‘득보다 실이 많다’고 판단한 것 같다”는 얘기가 나온다.

교육부가 현실을 외면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학부모에게 돌아간다. 더구나 입시 개편으로 학생부 비교과가 폐지되면 수능 최저를 적용하는 대학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더 많은 학생·학부모가 사교육업체에서 발표하는 예상 등급 컷으로 인생을 건 ‘도박’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교육을 없애려는 다양한 대책을 내놓는 정부가 정작 학생·학부모가 필요로 하는 정보는 사교육에 떠넘기는 일은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

전민희 교육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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