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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 물가, 역대 최장 마이너스···'저성장 저물가' 고착화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신승철 한국은행 국민계정부장이 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2019년 3분기 국민소득(잠정)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신승철 한국은행 국민계정부장이 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2019년 3분기 국민소득(잠정)을 발표하고 있다. [뉴스1]

저물가 경고음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경제 전반의 물가수준을 나타내는 지표인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의 하락폭과 하락기간 모두 심상찮다.

[뉴스분석]

3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19년 3분기 국민소득 잠정치’에 따르면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은 전기 대비 0.4% 성장했다. 10월 발표한 3분기 GDP 증가율 속보치와 같은 수치다.

이날 발표 중 눈에 띈 건 GDP 디플레이터 등락률이다. GDP 디플레이터는 명목 GDP를 실질 GDP로 나눈 값이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모든 재화와 서비스를 포괄하는 가장 종합적인 물가 지수다. ‘GDP 물가’라 할 수 있다.

3분기 GDP 디플레이터는 전년 동기 대비 1.6% 하락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2분기(-2.7%) 이후 20년 만에 가장 큰 하락폭이다.

“GDP 물가 하락 기간, 유례없다”

하락폭보다 더 큰 문제는 하락기간이다. GDP 디플레이터는 지난해 4분기부터 네 분기 연속 하락했다. 국민 경제 차원의 물가수준이 1년 전보다 떨어진 상태가 1년이나 이어진 셈이다. 네 분기 연속은 1961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장 하락기간이다. 종전에는 외환위기 직후 세 분기 연속(1998년 4분기~ 1999년 2분기) 하락이 최장이었다. 하락폭도 2018년 4분기 –0.1%, 2019년 1분기 –0.5%, 2분기 –0.7%, 3분기 –1.6%로 갈수록 커졌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신승철 한국은행 국민계정부장은 “성장률과 물가가 많이 떨어진 상황인데, 과거에 이런 사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며 “(올 4분기에도) GDP 디플레이터 등락률이 갑자기 플러스로 전환하긴 쉽지 않지만 하락세는 완화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올 4분기에 또다시 다섯 분기 연속 하락 기록을 쓰게 될 거란 예상이다.

올해 1~3분기 누적 GDP 디플레이터 등락률은 –1.0%이다. 내년 6월 발표될 예정인 2019년 연간 GDP 디플레이터 등락률도 마이너스일 것이 확실시된다. 연간으로 GDP 디플레이터 등락률이 마이너스였던 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2%)과 반도체 가격이 급락했던 2006년(-0.2%)뿐이었다. 1999년과 2006년엔 GDP 디플레이터가 각각 3분기와 2분기 동안 반짝 하락한 뒤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금 같은 네 분기 연속 하락세는 이례적이다.

수출 기업 채산성 악화→투자·소비 부진

GDP 디플레이터가 전년 동기보다 하락했다는 건 명목 GDP 증가율이 실질 GDP 증가율보다 낮다는 뜻이다. 물가를 반영하는 명목 GDP는 체감경기에 더 가깝다. 따라서 명목 GDP 증가율이 더 낮다는 건 경제활동을 열심히 한 것에 비해 손에 쥐는 액수가 적다는 뜻이다. 그만큼 경제주체가 느끼는 체감 경기는 팍팍해지는 셈이다.

항목별로 살펴보면 3분기 내수 디플레이터는 전 분기보다 오름세가 둔화했다(1.7→1.0%). 8, 9월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영향이다. 수출 디플레이터는 하락폭이 크게 확대됐다(-2.0→-6.7%). 반도체·디스플레이·석유화학·철강 같은 주력 수출품목 가격이 크게 떨어져서다.

한은은 국내 물가보다는 수출 가격의 하락이 주요 원인이라는 점을 근거로 ‘GDP 디플레이터 하락=디플레이션’은 아니라고 말한다. 디플레이션은 일반적으로 총수요 부진으로 인해 국내 물가 수준이 광범위하게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디플레이션까지는 아니라 해도 GDP 디플레이터의 장기 하락은 심각한 저물가 상황을 드러내주는 지표임엔 틀림없다. 수출 디플레이터가 크게 하락한다는 건 수출 기업의 채산성이 그만큼 악화하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수출품 가격이 수입품보다 더 크게 떨어져 수출 제조업체의 채산성이 악화하고 영업이익이 줄고 있다”며 “이는 투자와 고용, 정부 세수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가계 소비에까지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저물가가 장기화해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다.
저물가 저성장 추세의 고착화를 막기 위해 필요한 건 민간 기업과 가계의 의욕을 북돋아주는 정책이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의 동반 하락속도가 생각보다 가파르다”며 “투자와 소비 관련 세제혜택 확대와 한시적 감세, 경직적 규제의 개혁 등으로 경제주체의 심리를 회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3분기 잠정 GDP 성장률이 0.4%를 기록함에 따라 한은이 전망한 올해 연간 2.0% 성장률을 달성하려면 4분기에 전 분기 대비 0.93% 성장을 이뤄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3분기가 0.4%에 그쳤음을 고려하면 쉽지는 않은 수치다. 이에 대해 신승철 부장은 “4분기에 정부가 재정집행을 최대로 하려고 하는 것이 긍정적 요소”라며 “연간 2.0% 달성이 가능할지는 아직 말할 순 없지만 불가능한 숫자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애란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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