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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분배 '차악'…세금으로 저소득층 일자리 소득 메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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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화하던 소득 양극화가 가까스로 ‘최악’을 면했다. 하지만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저소득층이 시장에서 버는 돈은 줄고, 부족한 소득을 정부가 메우는 상황이 반복하고 있다. 중산층 이상 자영업자 소득도 크게 줄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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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계청은 21일 이런 내용의 ‘2019년 3분기 가계동향조사(소득 부문)’를 발표했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3분기 가구당 월평균 소득(2인 이상 가구)은 487만7000원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대비(이하 동일) 2.7% 늘었다. 문제는 ‘소득 성적표’ 곳곳이 건강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가까스로 면한 소득 분배 ‘최악’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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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불평등은 다소 개선됐다. ‘포용 성장’을 앞세운 정부가 가장 주목하는 1분위(소득 하위 20%) 가구 월평균 소득이 137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3% 늘었다. 2분위(하위 20∼40%), 중간 계층인 3분위(상위 40∼60%), 4분위(상위 20∼40%) 가구 소득도 각각 4.9%ㆍ4.1%ㆍ3.7% 늘었다. 소득 많은 5분위(상위 20%)는 980만원으로 0.7% 늘었다.

소득 불평등을 가늠하는 지표인 ‘5분위 배율’은 5.37배로 전년 동기(5.52배) 대비 나아졌다. 5분위 배율은 5분위 가구 처분가능소득(세금ㆍ이자 등을 제외하고 실제 쓸 수 있는 돈)을 1분위 가구 처분가능소득으로 나눈 것이다. 김영훈 기획재정부 정책기획과장은 “1분위 소득 증가세가 확대하고, 5분위 배율이 3분기 기준 4년 만에 하락하는 등 저소득층 소득ㆍ분배여건이 뚜렷하게 개선됐다”고 분석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통계청 발표 직후 “가계소득 동향 상 그간 저소득가구 소득 감소가 아팠지만 2분기부터 나아졌고, 3분기에는 가계 소득과 분배 면에서 확실히 좋아졌다”며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추진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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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간신히 최악을 면했을 뿐 ‘차악’ 수준이란 지적이 나온다. 비교 대상으로 삼는 지난해 5분위 배율이 통계 조사를 시작한 2003년 이후 최고였다는 점에서다. 통계청장을 지낸 유경준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소득 불평등이 가장 심한 때와 비교해 다소 나아졌다는 얘기”라며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 이후 지난해를 제외하면 올해 소득 불평등 정도가 가장 심하다”고 지적했다. 5분위 배율은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부터 5배로 올라섰다.

세금으로 메운 저소득층 일자리 소득

늘어난 저소득층 소득도 따져보면 정부가 재정을 퍼부은 덕분이다. 전체 가구 일자리 소득(근로 소득)은 4.8% 늘었는데 1분위 가구만 홀로 6.6% 감소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경기 불황 등 여파로 직격탄을 맞은 저소득층이 일자리를 잃거나 주 52시간제를 시행한 여파로 근로 소득이 줄었다”고 분석했다.

줄어든 저소득층의 근로 소득을 메워준 건 정부였다. 공적연금ㆍ기초연금ㆍ사회수혜금 같은 ‘이전소득’이 11.4% 늘어 소득 분배율을 벌충했다. 박상영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지난해 4월 기초연금 인상, 9월 근로ㆍ자녀장려금 지급 확대에 따라 이전소득이 늘어 1분위 소득 증가를 이끌었다”고 말했다. 쉽게 말해 스스로 잡은 물고기(근로소득)가 아니라 나라에서 잡아준 물고기(이전소득) 덕분에 허기를 면한 셈이다.

세금ㆍ국민연금ㆍ건강보험료같이 국민이 소비 활동과 무관하게 매달 의무적으로 내는 돈(비소비지출)은 113만8000원으로 6.9% 늘어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전체 소득의 23.3%로 비중 역시 역대 최대다. 2017년 2분기부터 10분기 연속 증가세다. 줄일 수 없는 지출인 비소비지출이 늘면 가계 소비 여력이 줄어든다.

불황 직격탄 맞은 ‘자영업’

근로 소득과 함께 소득의 또 다른 축인 ‘사업 소득’은 더 좋지 않다. 월평균 88만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4.9% 감소했다. 2003년 이후 역대 최대 폭 줄었다. 구체적으로 5분위가 12.6%, 4분위가 10% 각각 감소했지만 1분위는 11.3% 올랐다.

박상영 과장은 “소비 둔화, 건설 부진의 영향으로 내수가 어렵다 보니 고소득층 자영업자가 아래 분위로 이동하거나 일자리를 잃었다”며 “상대적으로 소득이 양호한 1분위 근로자가 2분위로 밀려 올라가면서 1분위 근로소득이 6.6%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세종=손해용·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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