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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인헌고 '사상 주입' 아니다" vs 교총 "제식구 감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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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1]

조희연 서울시교육감. [뉴스1]

'정치 편향 교육' 논란이 제기된 서울 인헌고를 조사한 서울시교육청은 21일 "법적·행정적 징계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일부 교사의 부적절한 발언은 확인했으나, 특정 사상을 지속·강압적으로 반복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던 학생들과 보수 성향의 교육단체들은 진보 교육감의 '제 식구 감싸기'라고 반발했다.

서울교육청, 실태조사 결과 발표 #"부적절 발언 있었으나 강제성 없어" #학교·교사 징계, 감사 안 하기로 #교총 "국회 차원의 조사 필요" 주장

이날 교육청은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20일까지 인헌고에 대해 특별장학 형태로 진행한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지난달 인헌고 일부 학생이 ‘임시정부 수립 백주년 기념 단축 마라톤 대회’에서 몇몇 교사가 반일 불매 구호를 담은 포스터를 제작케 하고 '아베 정권 규탄' 등의 구호를 외치게 했다고 주장했다. 수업 시간 교사로부터 "조국 뉴스는 가짜" "너 일베냐"는 얘기를 들었다고 주장도 나왔다.

언론보도와 보수단체의 항의가 이어지자 교육청은 '정치 편향' 의혹을 제기한 학생들을 면담하고, 전교생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교장·교감·교사에 대한 개별 면담도 진행했다.

"부적절한 발언 사실, 강압은 없어"

교육청의 특별장학 중 실시된 설문조사(307명 대상)에서 구호 제창에 '교사의 강요가 있었다'고 응답한 학생은 97명이었다. 교사가 "조국 뉴스는 가짜"라고 말한 걸 들었다고 답변한 학생은 29명, "너 일베냐"는 말은 28명으로 확인됐다.

지난달 23일 몇몇 교사로부터 편향된 정치 사상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태윤 기자.

지난달 23일 몇몇 교사로부터 편향된 정치 사상을 강요받았다고 주장한 서울 관악구 인헌고등학교 학생들이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태윤 기자.

교육청 관계자는 "응답자의 분포는 특정 학급이나 학년에 집중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교육청은 인헌고 교사들이 부적절한 발언을 한 건 사실이나, 맥락 상 법적·행정적 징계 대상은 되지 않는다고 결론냈다.

교육청은 학생들이 문제 삼은 반일 구호는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사회 통념에 따른 것"이고, '가짜 뉴스'는 학생이 가져온 영상에서 사실이 아닌 부분을 확인해주는 과정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했다. '일베'란 표현은 학생의 거짓말을 추궁하는 과정에서 학생 "거짓말하는 것은 조국이죠"라고 말하자 교사가 "혹시 너 일베하니"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우발적인 상황에서 나온 일이란 판단이다.

이런 조사 결과에 따라 교육청은 "특정 정치사상을 지속·강압적으로 반복하거나, 정치편향적 교육이 반복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일베' 발언을 한 교사가 나중에 학생에 사과했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교육청은 인헌고에 대한 별도의 행정처분이나 관련자 징계, 특별감사 등을 하지 않기로 했다.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보수시민단체 회원들이 '반일강요 및 탈원전운동 학생운동 인헌고등학교 교장 및 교사 직권남용 형사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보수시민단체 회원들이 '반일강요 및 탈원전운동 학생운동 인헌고등학교 교장 및 교사 직권남용 형사고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스1]

교육감 "섣부른 신념화는 독선으로 흐를 수도"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인헌고 사태에는 교육청의 책임도 있다"며 "사회현안과 관련된 토론교육에서 정치적 중립성의 범위와 한계, 정치 편파성 범위 등에 대한 규범과 규칙을 명확히 제시하겠다"고 밝혔다. '서울형 사회현안 교육 원칙'을 마련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고, 독일의 '보이텔스 바흐 합의'와 같은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겠다고도 했다.

조 교육감은 문제를 제기했던 인헌고 학생들에게 "남다른 감수성으로 교사와 다른 시각과 생각을 지니고 행동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싶다"면서도 "검토되지 못한 섣부른 신념화는 독선으로 흘러 자신과 사회에 매우 위험할 수 있음을 유념해달라"고 당부했다.

해당 학생들은 "교사의 정치편향 교육에 관해 주장한 학생이 적어 의미가 없다는 교육청 주장은 신뢰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3학년 최인호(18)군은 "교육감은 그간 소수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해놓고, 학생들의 의견을 묵살하는 것은 잘못"이라면서 "앞으로도 교사의 정치편향 교육에 대한 규탄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조희연 교육감 규탄 및 인헌고 교장·교사 10명 검찰 고발' 기자회견에서 인헌고 교장과 교사들의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전국학부모단체연합 회원들이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조희연 교육감 규탄 및 인헌고 교장·교사 10명 검찰 고발' 기자회견에서 인헌고 교장과 교사들의 징계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교총 "조사 부실, 학생 탓을 했다" 

보수 성향의 교육단체들은 "진보 성향의 조희연 교육감이 전교조·혁신학교의 문제를 제대로 진상을 규명하지 않고 본질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교총 조성철 대변인은 "교육청이 실태조사 과정에서 '애들이 편파적'이라고 오히려 학생 탓을 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면서 "공정성이 의심되는 조사 결과를 발표해 오히려 학교 현장에 논란과 갈등이 퍼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오후 한국교총은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인헌고 등 정치편향 논란이 불거진 학교에 대해 국회 차원의 조사를 촉구하고, 여당 등이 추진하고 있는 만 18세로 선거연령을 낮추자는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박형수·전민희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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