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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범죄합수단과 역사의 아이러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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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문병주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병주 사회2팀장

문병주 사회2팀장

2013년 3월 11일, 박근혜 정부의 첫 국무회의가 열린 직후 법무부가 부산해졌다. “각종 주가조작에 대해 자금 출처, 투자 경위 등을 철저히 밝혀 투명하게 할 것”이라는 대통령의 강력한 발언 때문이었다. 대통령이 꾸준히 문제시해왔던 사안이라는 청와대 측 해설이 있었다.

그로부터 한 달도 안 돼 주가조작 등 증권범죄를 신속하게 수사하는 정부합동수사단설치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무부 업무계획이 대통령에게 보고됐고, 다시 한 달이 지나기 전 서울중앙지검에 ‘증권범죄합동수사단’(현 서울남부지검 소재)이 설치됐다. 속전속결이었다. 검찰이 중심이 되고 금융감독원, 국세청 등 유관기구에서 인력을 파견받아 지난 9월까지 자본시장법 위반 사범 960여 명을 기소하는 등 금융범죄에 특화된 이유로 ‘여의도의 저승사자’로 불린다.

노트북을 열며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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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합수단의 운명이 현재 진행 중인 검찰 직접수사 축소 논의에서 결정되게 됐다. 직접수사부서 몇 개를 폐지하느냐를 가지고 논란이 있지만 어찌 됐든 법무부는 올 말까지 추가 직제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제2기 법무·검찰개혁위원회는 검찰의 직접 수사 축소를 첫 번째 권고사항으로 내놓으면서 대표 사례로 서울중앙지검 특수부(현 반부패수사부)와 서울남부지검의 합수단을 꼽았다. 합수단의 폐지가 기정사실화된다면 2013년 당시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부터 신설까지 걸린 것과 비슷한 시간을 들여 문을 닫게 된다.

이를 “역사의 아이러니”라며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국정농단 사건을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이 추진한 상당수의 정책이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씨와 연관됐다. 여의도 증권가와 검찰 내부에서는 합수단의 출범 역시 이와 무관치 않다는 해석이 나왔다. 최씨의 친인척 중 한 명이 주식투자를 했는데 주가조작 세력에 의해 피해를 봤고, 이런 이유로 박 전 대통령이 주가조작 근절을 강조하게 됐다는 것이다.

역으로 합수단의 폐지 논의를 조국 전 법무장관 일가에 대한 수사와 연관 지어 보는 시각이 많다. 합수단 소속 검사가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 투자와 관련한 수사에 투입되고, 합수단에서도 관련 자료들을 지원해 줘 수사의 진척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다수의 정치인이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는 신라젠 사건 역시 합수단에서 들여다보고 있다.

합수단 운명이 결정될 시간은 한 달여 남았다. 탄생과 소멸이 모두 정치적 이유, 특히 대통령 주변의 사람들 때문이라는 해석을 남길지 주목된다.

문병주 사회2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