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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대 홍콩 지지 '레논벽' 훼손···대학가로 퍼지는 반중 감정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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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에 홍콩 시위 지지를 뜻하는 '레논 벽'이 설치 됐지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중국인 유학생이 붙인 "북한 문제부터 걱정해라" 등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아주대 학생 제공]

13일 경기도 수원 아주대학교에 홍콩 시위 지지를 뜻하는 '레논 벽'이 설치 됐지만 24시간도 지나지 않아 중국인 유학생이 붙인 "북한 문제부터 걱정해라" 등 비난하는 내용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아주대 학생 제공]

홍콩 민주 시위 지지한다는 의미로 대학가에 설치된 '레논 벽'이나 대자보 등을 훼손하는 사건이 이어지며 국내 대학생들 사이 중국에 대한 ‘반중(反中) 감정’이 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지난 14일 경기도 수원의 아주대학교에 설치된 '레논 벽'은 “먼저 너희들이 북한 문제부터 걱정해라” “중국 역사를 잘 알아보라” “폭력시위 반대!” 등 홍콩 시위 지지를 비난하는 의견으로 가득 찼다.

레논 벽은 1980년 12월 암살당한 영국 밴드 비틀스의 멤버 존 레논을 추모하기 위해 옛 체코슬로바키아 수도 프라하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 벽에는 반전 운동을 한 존 레논을 추모하는 내용의 메모가 붙었고 곧 민주화 운동의 상징이 됐다고 한다.

아주대 학생이라고 밝힌 손 모씨는 “레논 벽을 설치한 지 24시간도 되지 않아 중국인 유학생들이 왜곡된 사실을 전파하고 ‘홍콩은 중국의 일부다’ 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시위를 지지하는 학생들을 모욕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10명 이상의 중국인 유학생이 모여 다른 학생이 접근조차 하지 못하게 하고 자신들의 의견을 적은 메시지는 테이프로 밀봉해 떼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학생이 반발하자 몇몇 중국 유학생이 “중국이나 홍콩에 가 본 적 있냐” “시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이다” “우리도 표현의 자유가 있다”며 맞서기도 했다고 한다.

11일 오후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게시판에 부착한 대자보가 훼손됐다. 찢긴 대자보는 인근 쓰레기통에서 조각난 채 발견됐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 캡쳐]

11일 오후 '노동자연대 고려대모임'이 서울 안암동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게시판에 부착한 대자보가 훼손됐다. 찢긴 대자보는 인근 쓰레기통에서 조각난 채 발견됐다.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 캡쳐]

하루 전 한양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한국 학생들이 홍콩 시위 대자보를 붙이는 과정에서 중국 유학생들과 충돌한 것이다. 같은 날 한국외대에서는 홍콩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대자보가 찢긴 채 발견되기도 했다.

대학 커뮤니티에 '반중 감정' 퍼져 

한국 학생과 중국 유학생 사이 크고 작은 충돌이 이어지며 서울시 내 몇몇 대학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중국 자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게시물도 올라오고 있다. 고려대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용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고파스’에는 “중국인 여러분 그냥 전 여러분이 싫어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글쓴이는 “비단 홍콩 문제뿐 아니라 중국인을 싫어하는 이유가 많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중국을 싫어하는 이유라며 “자기들 맘에 안 든다고 대자보 찢어서 남이 쓴 문서 손괴하는 거” “팀 프로젝트에서 잠수타서 팀별 과제 폭파하는 거” “중국 말로 떠들면서 담배 길빵(길에서 흡연)하는 거” 등등을 적었다. 이 글은 17일 오전 기준 1만683명이 읽었다. HOT 게시물 게시판의 일반 게시물과 비교하면 두 배 이상 많은 학생이 읽은 셈이다.

비슷한 갈등을 겪은 한국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반중 감정이 엿보이는 글이 여럿 올라왔다. 중국인들을 ‘노답(답이 없다)’이라 지칭하며 “다른 문화를 인정하지 않는 오만함", "대화 나누기조차 싫어진다”는 등 비판하는 글도 있었다. 미세먼지, 역사 문제 등 다른 사안에서 비롯된 반중감정도 보였다. 한 학생은 “알면 알수록 혐오스러운 나라가 중국”이라며 “미세먼지 문제가 자국 탓임을 절대 인정하지 않고 6·25 전쟁 당시 국제법을 위반하면서 참전한 것도 합리화한다”고 썼다.

"‘혐중’으로까지 퍼지지 않아야" 

이런 가운데 홍콩 시위 지지와 별개로 중국 자체에 대한 혐오가 퍼지는 건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학생은 고파스에는 “솔직히 우리나라 학생 중 중국인에게 ‘짱X’라는 혐오 표현 쓰며 무시하는 사람이 꽤 많다”며 “몇몇 사람의 무분별한 중국 혐오는 일본 극우가 혐한 운동을 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고강섭 한국청년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중국 유학생들은 반박하고 싶은 의견이 있다면 유학생 학생회 같은 공식적인 접근을 통해 진행해야 하지 개인의 감정으로 대자보를 훼손하거나 하면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고 경계했다. 이어 “우리나라 학생들도 홍콩과 중국 사이 역사적인 배경을 파악하고 스스로 입장을 정하되 이 문제 외에 다른 이슈로 확장해서 '혐중'으로까지 이어지는 건 곤란하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립대 사회학 교수는 “개인이 생각할 자유에 대해서는 금지할 수 없지만, 대자보 훼손과 같은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문제가 다르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이 원래 싫었다”며 “혐오 행동하는 것 역시 학생 사회 내부에서 스스로 자정 작용하며 돌이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태윤 기자 lee.ta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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