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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기업 위법 땐 이사 해임 요구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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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횡령·배임 등의 법령 위반 혐의가 일부 드러난 기업의 이사를 해임하라고 국민연금이 요구할 전망이다. 보건복지부는 13일 공청회를 열어 이런 내용을 담은 경영참여 목적의 주주권 행사 가이드라인을 공개한다.

경영 참여 주주권 가이드라인 #“경영권 침해, 연금사회주의 우려”

국민연금이 지난 3월 한진칼 주주총회에서 정관 변경을 요구하며 경영 참여 주주권을 행사한 이후 이제는 모든 기업에 본격적으로 경영참여에 나서겠다는 뜻이다. 최경일 보건복지부 국민연금재정과장은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과 주주 가치를 높이고, 주주활동의 예측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다”며 “그동안 단계별로 강도를 높이는 방식을 취했다면 이번에는 기업 상황에 맞춰 필요한 주주제안을 하게 바뀌었다”고 말했다. 처음부터 센 조치를 취할 수 있게 됐다. 복지부는 국민연금 실무평가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달 중 기금운용위원회에서 의결한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횡령·배임 등의 유죄가 확정될 경우 상법에 따라 이사 자격을 박탈하는 ‘이사의 자격’ 조항을 정관에 넣으라고 요구한다. 내부거래, 내부 통제, 준법경영을 담당하는 위원회(사외이사로만 구성)를 이사회에 설치하는 조항을 정관에 넣도록 요구한다. 또 이런 기업에 특정인을 사외이사(감사위원)나 감사로 선임하도록 요구한다.

“가이드라인 정하면 수익률 떨어질 수도”

임시주총 소집을 청구한 뒤 법령위반에 관련된 이사 해임 주주제안을 상정한다. 법령 위반 우려 기업은 횡령·배임뿐 아니라 부당지원, 경영진의 사익편취 등으로 기업가치가 훼손되거나 주주권익이 침해될 소지가 있는 곳을 말한다.

국민연금은 이사회에 배당정책과 공시를 담당하는 주주권익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정관 변경을 요구한다. 또한 임원보상정책 및 공시를 담당하는 위원회(사외이사로만 구성) 설치를 정관에 넣도록 요구한다. 지속적 반대 의결권도 행사한다. 장기 연임하는 사외이사를 결격 사유로 보는 조항을 정관에 반영하도록 요구하고, 지속적으로 반대의결권을 행사했으나 개선이 없는 경우 이사 해임을 요구한다.

국민연금은 기업의 배당정책, 임원보수한도 적정성, 법령 위반 우려 등의 중점관리 기업이나 책임투자 평가에서 2개 등급 하락한 기업을 대상으로 비공개 대화와 공개 대화를 차례로 추진하되 개선되지 않거나 그런 노력이 없으면 경영참여 주주권을 행사한다. 경영참여 대상 기업은 기금운용본부 산하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가 선정해 기금운용위원회에 올려 결정한다. 수탁자위원회가 주주권 행사를 의결하면 주식 보유 목적을 경영참여로 변경하고, 보유지분 10% 이상 기업의 주식 매매를 정지한다.

국민연금은 환경·사회·지배구조 등을 반영하는 책임 투자를 국내외 주식과 채권에 적용한다. 책임 투자 요소를 고려해 국내외 위탁운용사를 선정한다. 양성일 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기업 통제를 강화한다는 문제제기가 있으나 기업가치 훼손으로 국민 자산에 피해가 생긴 경우만 수탁자책임 활동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원식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면 안 된다. 위탁운영사가 책임지고 운용하게 해야 한다”며 “이렇게 가이드라인을 정하면 수익률이 오히려 떨어질 거라고 본다. 경영권 침해로 볼 수 있고, 연금사회주의로 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성식·이에스더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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