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 습격 받는 한국 수출(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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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자동차>
우리 나라 주요 수출상품이 해외시장에서 활기를 잃고있다. 엔화 시세하락으로 가격경쟁력을 갖춘 일본상품들이 한국의 수출거점을 공략하고 있기 때문이다. 3회에 걸쳐 그 실태를 알아본다.<편잡자 주>
「한국경제의 수준」을 상징하는 현대자동차의 엑셀이 미국시장에서 고전하고있다.
현대자동차의 수출실적은 올 들어 8월말까지 총14만1천9백62대로 전년동기 25만5천3백82대에 비해 11만3천4백20대나 줄어들었다.
월별로는 작년 12월 한 달 동안 5만6천3백17대를 수출했으나 1월 들어 2만3천3백6대로 반감했고 특히 5월 이후에는 소나타를 중심으로 한 달 평균 6건∼1만대 수준에 머무르고 있어 우려를 더해주고 있다.
현대뿐이 아니다. 대우 르망의 수출실적은 올 들어 8월까지 1만6천3백58대에 불과해 작년 같은 기간 4만6천6백93대의 3분의1수준에 그치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페스티바(프라이드) 만이 8월까지 작년(4만8천7백82대)보다 조금 많은 5만7천6백97대를 수출했을 뿐이다.
이같이 한국자동차의 수출이 부진한 것은 수출의 9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떨어진데다 신차종 개발이 늦었기 때문이다. 또 내수폭발로 자동차업체들이 수출보다는 마진이 좋은 내수에 주력하고 있으며 특히 엑셀의 경우 일본의 미국 소형차 시장에 대한 집중공략에 타격을 받은 것으로 분석되고있다.
더구나 미국 내 현대자동차 딜러 3백여 명 중 50여명이 떨어져 나갔고 최근에 미국 고속도로 손실 자료원이 엑셀의 안전도가 최하위를 차지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 한국 자동차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는 등 자동차 수출시장에 낀 먹구름이 좀체로 걷힐 것 같지 않다.
현대 측은 10월말부터 성능이 개선된 신형 엑셀이 본격적으로 미국에 상륙하면 어느 정도 수출이 회복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으나 미국소비자들이 엑셀을 선택할는지는 미지수다.
엑셀의 수출부진은 무엇보다도 원화 평가절상과 이에 따른 가격경쟁력 약화가 한몫을 했다.
엑셀의 미국 내 판매가격은 86년 10월 4도어 GLS형이 7천95달러, 3도어 기본형이 4천9백95달러였으나 불과 2년 반 사이에 각각 7천9백99달러, 5천7백24달러로 올랐다.
그런데 성능이 훨씬 우수한 일본의 닛산, 도요타의 동급 소형차는 7천5백∼9천 달러에 팔리고 있어 한국 차와 가격 면에서 별 차이가 없다.
일본은 특히 올 들어 미국소형차 시장을 집중공략, 도요타의 경우 할부율을 2·9%까지 낮췄으며 1천5백 달러의 현금 리베이트를 해주고 있다. 닛산도 2천5백 달러의 현금 리베이트를 해주는데 반해 엑셀은 리베이트가 3백∼1천 달러에 그치고 할부율도 12%에 이르러 리베이트·할부율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엑셀이 도요타의 코롤라나 닛산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비싼 결과가 나오는 것이다.
최근에는 혼다 자동차도 1천5백 달러의 리베이트를 해주고 있다.
그러나 수출부진을 원화 절상과 외부적인 요인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일본의 경우 엔고를 극복한 것은 물론이고 대미수출 자율규제기간 중 보호무역추세에 대응, 미국에 현지공장을 세우는 등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업체질을 개선한 반면 한국자동차업계는 초기의 성공을 지나치게 낙관한 점도 있다.
소비자들의 입맛이 까다롭고 선택의 폭이 넓은 미국 자동차시장에서 승용차의 라이프사이클은 보통 1년∼2년인데 엑셀의 경우 3년이 넘도록 한 차종에 의존, 모델교체의 타이밍을 놓친 것이다. 게다가 엑셀의 이미지는「값 싼차」로만 심어져 부정적이다.
한국 자동차수출의 앞날은 곧 미국에 상륙하는 신형엑셀의 성공여부에 달려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 같다.<길진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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