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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수 vs. 프렐조카쥬, 한국인이 그린 모던수묵화, 서양인이 그린 채색동양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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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국과 프랑스를 각각 대표하는 안무가의 무대가 동시에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 11월 1~3일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에서 공연된 국립현대무용단 신작 ‘검은 돌, 모래의 기억’과 같은 기간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 프렐조카쥬 발레단 내한공연 ‘프레스코화’다.

[유주현 기자의 컬처 FATAL]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한국 춤사위를 해체해 모던한 형태로 재조립하는 안성수와 동양의 전통적 모티브를 이번 작품의 키워드로 선택한 프렐조카쥬. 무용이 시간이라는 차원에 그리는 그림이라면, ‘현대판 동양화’ 두 편을 감상했달까. 두 그림을 통해 한국인이 생각하는 한국적인 아름다움과 서양인이 바라보는 동양적인 아름다움의 대조가 흥미로웠다.

‘검은 돌...’은 선(禪) 스타일의 수묵화와도 같이 철저히 정제된 미장센을 추구했다. 기왓장 모양으로 잘게 쪼개지는 조명 아래 마치 종묘제례악의 일무 대열처럼 가지런히 줄 맞춰선 무용수들이 반복적인 리듬을 연주하는 국악기 소리에 몸을 맡긴다. 움직임은 한국 춤에서 호흡을 제거하고 몇 배속으로 돌린 듯한 안성수 특유의 빠르고 경쾌한 안무 그대로다. 여기에 웨이브를 더해 물 흐르듯 유연한 동작의 연속이다.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2017년 크게 호평받았던 ‘제전악, 장미의 잔상’에서 호흡을 맞춘 라예송 작곡가를 다시 호출해 음악과 무용이 서로에게 종속되지 않고 평등한 관계를 이루는 무대를 만들어냈다. 전작과 달리 선율을 많이 활용했다고 했지만, 음악은 여전히 리듬 중심이었다. 해금·대금·가야금·피리·타악과 구음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들은 마치 국악의 엑기스만 뽑아낸 듯한 소리로 자기 주장을 하고 있었다. 오케스트라 피트 안에서도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하며 꾸준히 존재감을 과시했다. 춤 없이 음악만 한참 연주하기도 하고, 공연 도중 갑자기 벌떡 일어나 박수를 받고 돌아앉기도 하며 나름의 퍼포먼스를 담당했다.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국립현대무용단 '검은 돌, 모래의 기억'

이 추상화의 의미는 ‘모래가 돌이었던 시절을 기억한다’는 제목 그대로다. “인생의 흔적에 대한 작품이자 무용수들과 3년간 함께 해온 내 흔적”이라는 안성수 예술감독의 말은, 올 연말 임기가 다하는 그가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쌓아온 기억을 되짚어보는 작업이라는 고백인 셈이다. 현대무용에서 한국적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며 모래처럼 부서져야 했던 지난한 과정을 반추하고 싶었던 걸까. 자신의 원형이 단단한 돌이었다는 깨달음을 얻은 뒤의 움직임들은 마치 뭔가를 벗어던지듯 자유로워 보였다.

프렐조카쥬 발레 '프레스코화'

프렐조카쥬 발레 '프레스코화'

프렐조카쥬가 구현한 동양적 아름다움은 보다 컬러풀했다.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긴 머리카락의 움직임은 서양인들이 특별한 로망을 품고 바라보는 캘리그라피에서 영감받은 것이라지만, 수묵이 아닌 채색화였다.

프렐조카쥬 발레 '프레스코화'

프렐조카쥬 발레 '프레스코화'

‘프레스코화’는 중국의 기담집 ‘요재지이’에서 벽화 속 긴 머리 여인에게 매료되어 그림 속 세상으로 빨려 들어가는 청년이 겪은 신비한 이야기를 모던발레로 풀어낸 작업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탄생에는 사연이 있다. 현대무용의 성지와도 같은 파리 테아트르 드 라빌에서 2016년 프랑스의 ‘국민안무가’인 프렐조카쥬에게 젊은 대중을 위한 작품을 위촉한 것이다.

프렐조카쥬 발레 '프레스코화'

프렐조카쥬 발레 '프레스코화'

프렐조카쥬는 최근 젊은 세대가 열광했던 게임 ‘포켓몬 고’를 떠올렸고, 요즘 시대의 화두인 가상현실(VR)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현실의 존재와 가상의 이미지의 만남’에 대한 개념적인 질문을 통해 동양적인 아름다움과 컨템포러리한 시의성, 대중적인 접근성까지 모두 아우르는 영리한 작품을 완성했다는 것이 박수칠 만하다.

그림 속으로 빨려든다는 것이 과연 말도 안되는 판타지일까. ‘현실판 빌리 엘리어트’라는 프렐조카쥬 자신의 경험이기도 하다. 유도를 배우던 소년이 우연히 친구 집에서 본 루돌프 누레예프의 사진 한 장에 빨려들어 판타스틱한 무용인생을 살게 된 것처럼. 사실 가상현실이란 보편적이다. 재미있는 소설이나 그림을 볼 때, 잘 만든 공연을 볼 때도 우리는 가상현실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심각한 질문을 잊게 만드는 건 아름답고 인상적인 미장센이다. 벽화 속 긴 머리 여인들은 정지화면처럼 부동자세를 취하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가 르네상스 회화같은 고전적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림 속 세상으로 들어가면 그야말로 ‘젊은 대중 취향 저격’으로 태세가 전환된다. EDM 클럽음악을 배경으로 축제같은 군무와 역동적인 솔로, 사랑의 파드되, 서커스 아크로바틱까지 한바탕 버라이어티한 쇼처럼 펼쳐진다.

프렐조카쥬 발레 '프레스코화'

프렐조카쥬 발레 '프레스코화'

안성수가 그린 모던 한국화가 개념적인 추상에 가깝다면, 프렐조카쥬가 그린 동양화는 화폭 곳곳에 심어놓은 스토리텔링의 매듭들이 좀더 그림을 가깝게 끌어당겼다. ‘요재지이’ 속 긴 머리 여자의 이야기는 다양한 춤의 풍경들, 그리고 무대라는 가상현실 속에 빠져들게 만드는 장치였을 뿐. 결국 현실의 우리와 가상의 예술 사이 경계를 허무는 건 ‘스토리텔링’이 아닐까 싶다.

글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국립현대무용단·LG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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