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물길 넓히든지 댐을 쌓든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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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최근 50년간(1954~2003년)의 기상 자료를 분석해 보면 강수량도 증가했지만 하루 강수량이 80㎜ 이상인 호우의 발생 빈도가 증가하는 추세(54~63년 연평균 1.6일에서 94~2003년에는 2.3일)를 보이고 있다. 하천으로 흘러야 할 물의 총량도 늘었고, 단위 시간 동안 흘러야 할 양도 늘었다. 그런데 물길은 과거와 마찬가지다. 일부 하천이 직선화되고 제방이 높아졌지만 하천의 단면적은 과거와 거의 같다. 직업상 이러한 위험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선 큰비가 오면 하류에 인구가 밀집된 한강과 낙동강의 제방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져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90년 한강유역 홍수 때 소양강댐은 위험수위까지 물이 찼다. 비가 조금만 더 내렸더라면 댐 붕괴로 이어져 서울이 물바다가 되는 참극이 발생할 가능성마저 있었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집중호우 때 충주댐에는 초당 2만4000㎥의 물이 밀려들어 왔다. 이는 댐 설계 홍수량 1만6000㎥보다 월등히 많고, 90년 홍수 때(2만2000㎥)보다 큰 값이다. 당시 위험수위에 육박해 있던 충주댐은 더 많이 물을 내보내야 했지만 여주 구간 제방 보호를 위해 초당 9000㎥밖에 방류하지 못했다. 하지만 만일 비가 더 내렸더라면 홍수 관리자들은 방류량을 늘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고, 하류는 대규모 홍수 피해를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고속도로와 도로가 새로 건설되었고 기존 도로는 넓혀졌다. 모두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교통량을 처리하기 위해서였다. 기존 도로의 선형을 고치고 신호체계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집과 농토.환경을 포기해 가면서 새 도로를 만들어 왔다.

그런데 우리는 흘러야 할 물의 양이 늘어난 것을 알면서도 물길을 넓히는 정책은 시도조차 못하고 있다. 아직도 같은 길(하천)로 좀 더 많은 물을 흘려보내려고 온갖 힘을 쏟고 있다. 배수관을 정비하고, 더 큰 배수 펌프를 설치하고, 하천을 직선화하고, 제방을 높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물을 받아 줄 하천 단면은 그대로다. 삶의 터전인 주택과 공장.농토 위로 물길을 낼 의사가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천문학적인 치수 투자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제방은 늘 불안하다.

이런 임시방편만으로 늘어난 홍수를 처리하기에는 한계에 이르렀다. 좀 더 많은 물을 흐르게 하기 위해서 제방을 한없이 높일 수는 없다. 제방을 높일수록 우리 머리 위로 흐르는 물의 양은 늘고, 제방은 붕괴될 위험이 높아지고, 제방 붕괴 시 피해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연의 변화에 적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우리가 하천을 제방으로 막지 않았더라면 최근 커진 홍수로 인하여 물길의 폭은 자연스럽게 넓혀졌을 것이다. 홍수 관리 측면에서 세계적 선진국인 네덜란드는 늘어나는 홍수량을 감당하기 위해 하폭을 넓히면서 제방의 높이를 낮추고 있다. 그것이 제방을 높이는 것보다 안전하고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물길을 넓히는 것은 홍수 대책으로 고려하고 있지 않다. 국토가 협소할 뿐 아니라 자기 집과 농토만을 지키려는 이기심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적극적인 홍수 대책을 펴야 할 때다. 늘어난 홍수량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물길을 확장하든지 이를 대체할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물길을 넓힐 수 없다면 홍수 조절을 위한 다목적댐이라도 지어야 한다. 특히 다목적댐은 홍수 방어와 물 부족 해소를 함께 해결할 수 있다. 최상류에 사방댐과 소형 댐을 만드는 것도 홍수 관리와 용수 공급에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최근에 발생하고 있는 홍수의 증가를 감내하기에는 비효율적이다. 따라서 홍수 조절이 가능한 규모의 다목적댐이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

김승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수자원프런티어사업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