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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문희철의 졸음쉼터

0.7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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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문희철 기자 중앙일보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문희철 산업1팀 기자

독일 태생의 이론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아무것도 기적이 아닌 것처럼,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이다.’

매일 아침 출근길 운전대를 잡습니다. 어쩌면 일상에서 벌어지는 아무것도 아닌 일입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오늘도 무사히 운전한다는 사실은 곱씹어보면 기적일 수도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운동신경이 좋다는 사람이 운전하다가 위험을 감지하는데 최소한 0.7초가 필요합니다. 운전자가 전방에 뭔가 튀어나올 것 같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액셀러레이터 페달에 올려두었던 우측 발을 떼는데 0.4~0.5초가 흐릅니다. 이 발을 브레이크 페달로 옮기면서 0.2~0.3초가 지나가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 실제로 차량이 멈추기까지 다시 0.1~0.2초가 필요합니다. 교통공학에 따르면 차종이나 차량 구조, 운전자의 연령이나 반응 속도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누구나 위험하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타이어가 실제로 멈출 때까지 이렇게 0.7초라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하루에만 왕복 한두 시간 정도 운전을 합니다.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위험한 0.7초는 끊임없이 스쳐 갑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액셀러레이터를 밟다 보면 가끔 코앞 상황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분명히 도로에 아무것도 없었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하는 운전자가 한둘인가요. 단 한 순간 지나가버린 사소한 0.7초는 인생을 좌우하는 사건이 될 수 있습니다.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오늘은 너무 평범한 하루였다’는 자괴감이 저녁놀처럼 지배하는 날이 있습니다. 하지만 도로에서 수없이 마주치는 차량 중에서 단 한 명의 운전자라도 부주의했다거나 의식을 잃었다면. 그리고 그새 0.7초가 흘렀다면. 오늘도 평온하게 퇴근길 운전대를 잡고 블루투스로 멜론플레이어에 접속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차량 잠금장치를 해제하고 귀갓길에 오르는 평범한 오늘이 어쩌면 기적 수 있습니다.

문희철 산업1팀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