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분수대

경제수석과 자기실현적 예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하현옥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하현옥 금융팀장

하현옥 금융팀장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왕이자 조각가인 피그말리온. 그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여인상을 조각한 뒤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인다. 조각상과 사랑에 빠져 그런 아내를 맞게 해달라고 기도한 그의 지극정성에 여신 아프로디테가 갈라테이아에 숨을 불어넣어 준다. 피그말리온 효과는 어떤 일이 잘 풀릴 것으로 믿으면 잘 되고, 안 풀릴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되는 ‘자기실현적 예언’의 같은 말이 됐다.

사회학자인 로버트 머튼은 집단의 사회 역학을 설명하며 ‘자기실현적 예언’이라 일컬었다. 이를 위해 가상의 은행 부도 사태를 예로 들었다. 건실한 지역 은행에 어느 날 특별한 이유 없이 많은 고객이 방문하고, 그 장면을 목격한 어떤 고객이 은행의 재정 상태에 문제가 생겼을까 불안해하며 돈을 인출한다. 은행이 파산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결국 은행은 부도가 난다는 것이다.

자기실현적 예언의 부정적 효과를 걱정하는 이가 이호승 청와대 경제수석이다. 지난달 13일 경제 상황 관련 브리핑에서 “경제 상황에 대해 계속해서 나쁜 점을 지적하고 나쁘다는 인식을 심으면 결국 실현돼 지출도 미루고 투자 안 하고 결국 경제가 진짜 나빠진다”고 말했다. 경제에 대한 우려를 드러내는 언론 등을 겨냥한 듯 “과도하게 위기를 너무 쉽게 얘기하는 것은 무책임하다”고 했다.

혹여 ‘말이 씨가 될까’ 이 수석의 걱정은 더 커진 듯하다. 지난 1일 국정감사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묻는 야당 의원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경제수석이 경기 판단의 가장 기초적인 수치를 몰랐을 리 없다. 차마 올해 1%대 성장률을 기록할 수도 있다는 전망을 입에 올릴 수 없어 묵묵부답을 택했을 것이다. 하긴 오일쇼크, 아시아 외환위기, 세계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할 수도 있으니 유구무언이기는 하겠다.

하현옥 금융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