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엔「1가정 2자녀」허용-작가 박경리씨 대륙강좌…『내가본 북간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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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작가 박경리씨는 지난 20일 대한상의 대 회의실에서 중앙일보사와 대륙연구소·대한상의가 공동으로 주관한 목요「대륙연구강좌」에 연사로 참석,「내가본 북간도」란 주제로 강연했다. 박씨가 대하소설『토지』집필을 위해 원주에 칩거한 뒤 대중 앞에 나선 것은 20여년만이다.
지난 8월9일부터 24일까지 중국의 북경·연길·백두산 등을 다녀온 박씨의 강연내용을 간추려 소개한다.<편집자주>
북경 천안문 광장에 이르렀을 때 나는 한없는 자유스러움을 느꼈다. 지난번 천안문 사태의 피비린내는 그 어디서도 맡을 수 없었다.
더위에 제복 앞가슴 단추를 풀어헤친 경찰들 앞을 행인들이 무심히 지나다니고 천안문 광장 앞 홍안의 인민군들은 관광객 앞에 수줍은 모습이었다. 경찰과 군대는 있으되 시민들이 그들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하는 그 자유로움 앞에서 한없는 부러움을 느꼈다. 우리는 범죄와 그 갖가지 것으로부터의 자유수호라는 이름아래 얼마나 그들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는가.
중국인들은 굼뜨다. 아니 끈질기고 꼼꼼히 하나하나 점검해 나가며 유유히 흘러간다. 그런 그들 앞에서 천안문 사태에 대해 비난하지 않았던 우리가 다행스럽다.
중국인들은 명분보다는 현실을 앞세운다. 그들은 패전이나 치욕을 이유로 목숨을 끊지 않는다. 그들은 적의 포로가 되도 구명을 빌고 풀려나면 다시 그 적과 싸운다.·
품성이나 개인의 존엄성마저 헌신하면서 실리를 추구하는 그들의 현실성 앞에 우리의 허황된 명분은 부끄럽다.
기차여행에서 만난 중국인들은 조용하고 겸손하며 상대에게 내밀한 친절을 보이는 예의를 갖추고 있었다. 중국인들은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살고 있는 오늘날까지도 유교적 전통을 내면화하여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이에 비해 우리는 유교로부터「명분」만 배워왔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유교가 중국 내에서부터 발전해 온데 비해 우리의 경우 외부로부터 유입한 유교적 가치관을 그 내면 속에 뿌리박기보다는 명분에 집착하는 것으로 변용 시킨 탓이 아닐까.
이데올로기 문제를 초월하여 생각해볼 때 지난 20여 년간 우리가 급속한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농촌을 황폐화시키고 대지를 오염·부식시킨 데 비해 중국은 공업의 낙후성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이어지는 토지에서 인민들이 건강한 삶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광활하고 비옥한 대지 위에서 11억의 인민을 먹이고 입히며 건장한 청년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얼마간 앞서있다 해서 그들에게 어설픈 우월감을 갖는다는 것은 어리석다. 우리가 그 동안 공업화, 경제성장과정에서 얻은 것 뿐 아니라 잃은 것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호텔객실에 놓인 초라한 성냥과 포도나무를 곧추세우기 위해 포도원에 세워진 굵직한 쇠파이프. 소모품 성냥은 불만 잘 켜지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쇠파이프는 해를 거듭해 가며 포도나무를 받쳐줘야 한다.
성냥개비보다 더 비싼 우리의 성냥갑, 대나무로 된 한해살이포도나무 받침대에 비교하면 그들이 얼마나 원칙에 충실한지 알 수 있다.
그들을 상대로 주판알을 갖고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계산과 술수는 중국에서 안 통할 것이다. 진실로 이익을 얻으려면 신의와 진심으로써 우리도 백년대계를 세워야한다.
중국의 소수민족 정책에서도 그들의 현실적 사고와 대국적 자세를 점할 수 있었다. 이를테면 인구문제로 골치 잃고 있는 중국에서 통상 1가정 1자녀 갖기가 장려되면서도 유독 조선족을 포함한 소수민족에는 1가정 2자녀를 허용하고 있는 것이다.
백두산에 오르는 그곳 동포들의 모습은 신들린 사람들 같았다. 마치 자신의 혼을 찾아 올라가는 것 같이 경이로움으로 가득 찬 눈빛들이었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우리 한민족의 이상, 그 영원을 향한 황홀한 눈빛들, 뭉쳐지면 얼마나 무한한 가능성을 펼쳐 보일까. 뭉쳤을 때 이기적 민족주의가 아닌 세계평화를 위한 한민족주의의 찬란한 가능성을 그들의 백두산을 향한 눈빛에서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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