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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감동은 절제된 감정에서 오는 것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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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신달자 시인

신달자 시인

“그 무엇 하나에 간절할 때는 / 등뼈에서 피리 소리가 난다 // 열 손가락 열 발가락 끝에 / 푸른 불꽃이 어른거린다 // (중략) 오직 간절함 그 안으로 동이 터 오른다.” (‘간절함’ 중에서)

시집 『간절함』 펴낸 신달자 시인

신달자(76) 시인이 열다섯 번째 시집 『간절함』(민음사)을 냈다. 2016년 『북촌』을 낸 뒤 지난 3년 동안 쓴 시 70편을 담았다. 신 시인은 최근 교통사고로 허리뼈가 골절되는 바람에 한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졌다. 시집을 내기 위해 침상에 누워 교정쇄를 검토해야 했다. 그는 “한 달 누워 있었더니 내가 앉고 서고, 걷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 깨닫게 됐다”며 “앞으로 남은 시간에는 사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어렵게 나온 이번 시집의 주요 소재는 인간의 감정이다. 시인은 ‘아득함’에 대해서는 “닿는 것은 세상사 아무것도 없다 / 바로 앞의 사람이 더 아득하다”고 적었고, ‘심란함’에 대해선 “오늘 내 가슴속 / 누가 무지갯빛 떡메를 치는가”라고 물었다. 이밖에 졸여짐·무심함·짜릿함·싸늘함 등 우리가 살면서 겪는 일상적인 감정들이 각각 한 편의 시로 묶였다.

신 시인은 “젊은 시절에는 내가 마치 감정이라는 영역에 특허를 낸 것처럼 감정을 키우고, 감정에 갇히고, 감정에 짓눌려 살았다. 하지만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내가 지나치게 감정을 남발하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같은 울음이라도 엉엉 우는 것보다 울음을 견디는 것이 더 비장해 보인다. 이처럼 문학도 절제에서 더 큰 감동이 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이러한 후회는 시집의 말미에 실린 산문 ‘나를 바라보는 힘’에도 등장한다. 그는 “인생에 후회가 있다면 남발한 내 감정”이라며 “그것에 형체가 있다면 두 팔을 묶어 감옥에라도 넣고 싶지만 그러지 못해서, 아니 스스로 만든 감옥에 넣기도 했지만, 그는 너무 자주 출소하거나 도망쳐서 내 가슴에 면도날 자국을 그었던 것이다”라고 적었다.

시인이 앞으로 쓰고 싶은 시는 ‘감정이 절제된 시’다. 신 시인은 “예전에는 괴로움을 추상적이면서도 관념적인 말로 가리려고 했는데, 나이가 들면서 내면을 정직하게 드러낼 때 비로소 시가 나를 찾아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시 한 편을 쓰더라도 정직하고 담백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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