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학과 거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요즘 타임지 교육 난에 실린 도표 하나는 우리의 눈을 크게 뜨게 만든다. 미국, 영국, 스페인, 아일랜드, 한국 등 5개국의 13세 어린이들을 상대로 수학과 과학실력을 테스트한 결과를 막대그림으로 나타낸 도표였다.
놀랍게도 우리나라 어린이들의 점수는 다른 선진국 어린이들을 당당히 누르고 굴뚝처럼 솟아 있었다.
수학의 경우 1천 점 만점에 한국 어린이들의 평균점수는 5백80점을 넘고 있었다. 물론 절대평가로는 60점도 못되는 턱걸이 수준이지만 그 아래로 스페인 어린이가 5백20점, 영국 어린이가 그 비슷한 점수인 것을 보면 우리 어린이들이 대견하다. 미국 어린이는 4백70점으로 한참 처져 있었다.
과학 역시 한국은 1천 점 만점에 5백50점으로 수위. 두 번째인 영국은 5백20점, 스페인이 5백 점, 미국은 4백70점.
임은 미국의 기초과학교육이 1960년대 스푸트니크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 기사에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대목은 한국을 『떠오르는 기술거인국』으로 지칭한 내용이었다. 그런 나라로 전세계에서 세 나라를 꼽았는데 한국을 일본 다음으로 평가했다. 서독이 우리나라 다음인 것도 의외다.
그까짓 순서야 어찌됐든 우리나라가 어느 사이에 이들 선진국 과학기군들 눈에 거인국으로 비친 것이 좀 얼떨떨하다. 아무리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보아도 우리가 기술거인국 같지는 않다. 칭찬도 유분수지 이런 칭찬은 사양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린이들의 수학이나 과학실력이 1등 이라는 얘기는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해외동포들의 자제들이 어디서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미국명문대학의 우등생 속엔 으레 한국학생이 끼어 있게 마련이다. 그만큼 머리도 있고 학습의욕도 대단하다는 얘기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교육제도다. 우리 어린이들의 학습실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결국 「수험선수」로 능력 있다는 의미 이상의 것이 아니다. 죽자 사자 대학에 들어간 대학생들의 학력수준이 과연 국제경쟁력이 있을까. 더구나 한심한 것은 우리나라 대학의 수준이다. 시설은 고사하고 교수 1인당 학생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는 현실 하나만 보아도 우리 대학의 지적 수준은 오히려 뒷걸음질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 어린이들의 실력은 오로지 입시를 위한 1회용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