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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적에 둘러싸인 정조, 어떻게 왕권 지킬 수 있었나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김준태의 자강불식(19)

태어나보니 할아버지는 임금이고 아버지는 세자다. 남부러울 게 없는 성장환경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11살의 어린 나이에 8일에 걸쳐 아버지가 굶어 죽어가는 모습을 속수무책 지켜봐야 했으니 말이다. 그것도 할머니의 고발로 할아버지가 외할아버지의 협조를 받아 아버지를 죽였다. 이런 정신적 충격은 어린아이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컸을 것이다. 바로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의 이야기다.

정조는 그 이후의 삶도 평탄하지가 않았다. 영조가 정조를 세손에 책봉하고 변함없는 신뢰와 애정을 표시하긴 했지만 죄인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이 될 수 없다며 신하들은 끊임없이 정조를 흔들어댔다. 영의정 김상로는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와 결탁하여 정조를 제거했으며 정조의 외작은할아버지 좌의정 홍인한은 세손은 정치나 나랏일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며 정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했다.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와 영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조의 친고모 화완옹주도 정조에게 적대적이었다.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 정조는 노론의 조직적인 반발로 재위 내내 힘들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조는 나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군주였다. [중앙포토]

조선의 22대 임금 정조. 정조는 노론의 조직적인 반발로 재위 내내 힘들어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정조는 나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군주였다. [중앙포토]

이들뿐만이 아니다. 사도세자가 죽는 데 앞장섰건, 동의했건, 방관했건 간에 훗날 정조가 왕이 되어 아버지의 복수를 할까 봐 두려워했던 대다수의 신하가 정조의 반대편에 섰다. 할아버지 영조와 어머니 혜경궁 홍씨, 일부 측근 신하를 제외한다면 왕실, 친척, 신하들 모두가 정조를 포위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무사히 왕위에 오르긴 했지만, 즉위 직후에까지 왕의 서재로 자객이 침투하는 등 목숨을 위협받은 일도 수없이 많았다.

그런데 이처럼 위태위태했던 정조의 위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튼튼해진다. 흔히 정조는 노론의 조직적인 반발로 재위 내내 힘들어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정조는 나름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군주였다. 결실을 보기 전에 정조가 승하했고 사후 수구파의 반동적인 조치가 있었기 때문에 아쉬움이 남는 것이지, 수원화성 건설, 장용영 설치, 탕평책 실시, 금난전권 철폐 등 정조는 본인의 개혁 의제를 상당수 실행에 옮겼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가 오로지 실력으로 신하들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 중 신하들과 유교 경전을 가지고 토론한 '경사강의(經史講義)'를 보면 그의 학문 역량은 신하들을 압도했다. 난다 긴다 하는 학자들을 비롯하여 천재라고 불렸던 정약용도 학문에서 정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정치와 행정 등 국정 업무에서도 정조는 신하들보다 몇 수 높은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러니 신하가 설령 정조의 의견에 반대하고 다른 주장을 하고 싶더라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정조를 견제하고 싶어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실력과 논리에서 밀리니 결국엔 정조가 하자는 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이는 정조가 그저 똑똑해서 가능했던 것이 아니다. 그는 평생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노력했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하루 동안 생각한 것과 실천한 것을 점검하여 하나라도 내세울 만한 것이 없으면 밥상을 마주해도 수저를 들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나는 즉위한 이래로 단 하나의 생각도 해이하게 가진 적이 없었고 단 한 가지의 일이라도 안일하게 행한 적이 없었다.”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 중 '경사강의'를 보면 그의 학문 역량은 신하들을 압도했다. 난다 긴다 하는 학자들을 비롯하여 천재라고 불렸던 정약용도 학문에서 정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자료 문우서림]

정조의 문집 '홍재전서(弘齋全書)' 중 '경사강의'를 보면 그의 학문 역량은 신하들을 압도했다. 난다 긴다 하는 학자들을 비롯하여 천재라고 불렸던 정약용도 학문에서 정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자료 문우서림]

정조는 이런 말도 했다. “정성을 다했는데도 감동하게 하지 못하고, 감동하게 할 정도가 되었는데도 응하지 않는 일이란 없다.” “타고난 성인(聖人)이 아닌 바에야 누구나 다 노력 끝에 자신의 삶을 완성하고 목표를 이뤄가는 것이 아닌가?” “하나씩 충족시켜나가면 백이 되고 천만이 되어 마침내 일정한 수준을 다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일정한 수준을 채운 후에도 자만하지 않고 나태하지 않은 마음을 갖추어, 백척간두에 올라서 다시 또 한 걸음을 내디뎌 나아가고, 태산의 정상에 올라 다시 또 다른 태산을 찾아오려야 하니, 늘 아직 미치지 못하였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노력하기를 죽은 후에야 비로소 그만두겠다고 다짐해야 할 것이다.”

정조가 생각하기에 사람이 마음만 먹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꾸준히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면 도달하지 못할 경지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정조의 마음가짐과 실천이 바로 정조가 압도적인 실력을 갖추게 한 것이고, 역사에 길이 남는 명군으로 만든 것이다.

동양철학자·역사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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