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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동양철학자·역사칼럼니스트

[김준태의 자강불식] 일찍이 맹자는 하늘이 어떤 이에게 큰 임무를 맡기고자 한다면 먼저 그 사람에게 실패와 시련을 준다고 했다. 그 사람을 더욱 강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여기 절망을 딛고 고난에 굽히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운명과 싸우며 자신의 역사를 써내려간 이들의 발자취가 여러분에게 위로와 격려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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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주대첩 승리로 이끈 강감찬, 그 힘은 어디서 나왔나

    그런 의미에서 거란과의 귀주대첩을 승리로 이끈 강감찬(姜邯贊)은 운이 좋은 사람이다. 현종이 강감찬의 전문성을 중시하고 그가 마음껏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귀주대첩이라는 성과도 도출할 수 있었다. 강감찬은 ‘나 아니면 할 사람이 없고, 이 일은 이 사람에게 맡겨야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2019.11.06 11:00

  • 수많은 적에 둘러싸인 정조, 어떻게 왕권 지킬 수 있었나

    영조가 정조를 세손에 책봉하고 변함없는 신뢰와 애정을 표시하긴 했지만 죄인 사도세자의 아들이 왕이 될 수 없다며 신하들은 끊임없이 정조를 흔들어댔다. 영의정 김상로는 영조의 후궁 숙의 문씨와 결탁하여 정조를 제거했으며 정조의 외작은할아버지 좌의정 홍인한은 세손은 정치나 나랏일에 대해 알 필요가 없다며 정

    2019.10.23 11:00

  • 너무 빨리 출세해서 불행했다, 정조의 오른팔 이 청년

    흔히 젊은 나이에 출세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우습게 보곤 한다. 홍국영은 시골로 쫓겨났다가 1781년(정조 5년) 4월 5일 강릉에서 생을 마감했고, 5년 후인 1786년 (정조 10년)에는 정조의 적장자 문효세자의 죽음에 홍국영의 잔당이 개입했다는 정순대비의 교지에 따라 나라의 역적으로 규정되었다. "앞사람(홍국영)의 실

    2019.10.09 11:00

  • "머리 나쁘면 백배 노력해야"…'사기' 1000번 읽은 김득신

    김치는 아들에게 학문의 속도가 늦어도 괜찮다며 다만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읽고 또 읽고, 외우고 또 외우라고 당부했다. 『독서기』의 기록은 후대의 다른 사람이 김득신의 꾸준한 노력을 높이 평가하는 과정에서 부풀려진 것이고, "한유의 『문장』, 사마천의 『사기』를 천 번 읽고서야 금년에 겨우 진사과에 합격했네

    2019.09.25 11:00

  • 황제가 덕 쌓으면 뭐하나, 간신 들끓는데…주희에 맞선 그

    하나는 주희의 객관적 관념론에 맞서 주관적 관념론을 주장했던 육구연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에서 행위자의 ‘동기’를 중시했던 주희의 생각에 반대하며 행위의 ‘결과’를 강조했던 진량이다. 하지만 통치자가 아무리 올바른 마음과 선한 동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현실에서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는다. 주

    2019.09.11 11:00

  • 곤장 40대 맞고 관직 강등…왕양명을 다시 세운 힘 뭘까

    열두 살 때 "일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성인(聖人)이 되기 위한 공부"라고 말했는가 하면 열다섯 살에는 홀로 가출해 한 달 동안 북쪽 국경을 답사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험난함과 편안함은 부질없는 뜬구름과도 같은 것, 중요한 것은 얼마나 나를 성장시키느냐고 어떻게 나를 단련시키느냐다. "옛 성인(聖人)들께서 지금

    2019.08.14 11:00

  • 경세가에서 학자로…귀양 간 정약용이 연 새로운 문

    관직에 나아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하겠다는 경세제민의 포부는 더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었고, 자신을 믿고 후원한 임금은 세상을 떠났으며, 사랑하는 이들이 모두 고초를 겪고 있는 상황. 자신 역시 유배지에서 언제 끝날지 모를 귀양 생활을 하는 처지. 비록 ‘경세가 정약용’의 문은 닫혀버렸지만, 자신의 저

    2019.07.31 11:00

  • 전장서 후퇴한 김유신 아들이 죄를 씻은 방법

    "어찌 구차하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런다면 장차 아버지를 어찌 뵐 수 있겠는가?" 하지만 이미 원술의 마음은 흔들렸던 것 같다. 그러나 김원술은 침묵했고 대신 노장군 아진함이 "공들은 힘을 다해 빨리 가시오. 내 나이 이미 일흔이니 앞으로 살아야 얼마나 더 살겠소? 지금이 내가 죽을 때인 것 같소"라며 아들과

    2019.07.17 11:00

  • 죄인이 된 한신, 왜 유방 앞에서 "다다익선" 외쳤나

    "그대는 군사를 얼마까지 거느릴 수 있소?"라는 유방의 질문에 한신이 "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하고 대답한 데서 유래했다. (한신이 정말로 모반을 획책했느냐 아니면 그의 능력을 두려워한 황실이 한신을 토사구팽한 것이냐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한나라 건국 3걸 중 소하와 장량은 현명한 처신으로

    2019.07.03 11:00

  • '합종연횡'의 주인공 소진과 장의가 던진 메시지

    ‘합종연횡(合從連橫)’의 주인공 소진(蘇奏)과 장의(張儀)의 이야기다. 연나라 임금에게는 진나라의 동진을 막기 위해 조나라와 연대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하고 조나라 임금에게는 한나라, 위나라와 힘을 합쳐야 진나라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식이다. 연나라를 나선 소진은 조나라, 한나라, 위나라, 제나라,

    2019.06.19 11:00

  • 왕의 동생 궁궐 출입 막다 폭행 당한 병사가 승승장구?

    경계 근무를 하던 병사가 암구호를 대답하지 않고 무작정 진입하려는 간부에게 원칙대로 대응해 포상 휴가를 받았다는 이야기다(암구호란 맨눈으로 상대방을 구별할 수 없는 야간에 피아식별을 위해 주고받는 문답식 비밀단어다. 암구호를 대답하지 않고 무단으로 접근하는 사람에게는 경고 후 공포탄 사격, 체포 등 단계별

    2019.06.05 11:00

  • 여섯 살 때 귀양 갔던 이준경 '복수의 칼' 쓰지 않은 까닭

    1504년(연산군 10년) 여섯 살 난 어린아이가 한 살 많은 형과 함께 귀양길에 올랐다. 갑자사화(甲子士禍)를 일으킨 연산군에 의해 할아버지가 사사 당하고 아버지 이수정과 아버지의 형제 4명이 참형을 당했으며 친인척들이 대거 몰살당하는 등 온 집안이 풍비박산 난 뒤였다. 그렇다고 이준경이 기득권 세력을 방치한 것은

    2019.05.08 11:00

  • 복수는 나의 힘, 그러나 소원 이룬 오자서의 비참한 최후

    본래 초나라 사람이었던 오자서는 아버지 오사와 형 오상을 억울하게 잃었다. "우리가 이 치욕을 씻지 못한다면 장차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를 홀로 둘 수 없으니 내가 아버지 곁으로 가서 함께 죽으마. 너는 가거라. 너라면 우리 가족의 원수를 갚을 수 있을 것이다". 오자서는 같은 원한을 가지고

    2019.04.24 11:00

  • 왕도 극한직업? 한글창제 때 기력 소진한 세종, 지팡이 의지

    모든 열정을 쏟아낸 세종의 건강은 악화할 대로 악화했고, 사랑하는 가족들이 연이어 죽으면서 정신은 피폐해졌다. 훈민정음을 만든 이유에 대해 세종의 애민사상이 발현된 것이라는 견해, 백성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라는 견해 등이 있다. 세종은 글자를 몰라 날짜와 시간을 알지 못하고 농사서를 읽지 못하는

    2019.04.10 11:00

  • "날 위해 슬퍼말라" 자살한 굴원이 오래 추모되는 이유

    초나라 임금 회왕이 진나라와 제나라 사이에서 어리석게 행동하다가 위기를 초래하자 어떻게든 막아보려고 애썼다. 회왕이 진나라에 속을 때도 홀로 나서 간언하며 임금을 깨우쳐주려고 노력했다. 그 충고를 듣지 않은 탓에 회왕은 진나라에 억류되었고 객사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지만.

    2019.03.27 11:00

  • 병법의 대가 손빈, 개밥 먹으며 복수의 칼 갈다

    출세하겠다는 야심으로 똘똘 뭉쳐 있던 방연은 능력이 뛰어난 손빈을 질투했는데 그가 자신의 앞길에 방해가 될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때 손빈은 제나라 군대가 마치 위나라 군대에 겁을 먹고 후퇴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연출했는데, 여기서 유명한 ‘감조지계(減?之計)’가 펼쳐진다. 만약 손빈이 절망을 견디다 못해 삶

    2019.03.13 11:00

  • 사형 집행 직전 목숨 건진 김구, 탈옥후 독립운동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인 스치다 조스케(土田讓亮)를 죽였고,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의거에 연좌됐으며, 1911년 안악사건(일제가 안명근 등이 데라우치 총독 암살을 모의했다고 날조한 사건)의 공범자로 체포되면서다. 그는 조선인으로 위장한 일본인 스치다를 격살했는데, 명성황후를 잔혹하게 시해한 일본에 원수

    2019.03.01 07:00

  • 치욕적 왜군 포로의 삶, 강항이 한 죽음보다 중요한 일

    "이국땅 삼경이면 밤마다 찬서리고 / 어버이 한숨 쉬는 새벽달일세 / 마음은 바람 따라 고향으로 가는데 / 선영 뒷산에 잡초는 누가 뜯으리 …… 피눈물로 한 줄 한 줄 간양록을 적으니 / 님 그린 뜻 바다 되어 하늘에 닿을세라" . 강항은 후지와라 세이카에게 조선의 제도와 의례를 설명해주었고, 사서오경 주석서에 일본

    2019.02.13 11:00

  • 재상에게 대들었다가…정도전,10년 귀양 살며 칼을 갈다

    "한나라 고조가 장자방(장량)을 쓴 것이 아니라 장자방이 한 고조를 쓴 것이다". 장자방과 한 고조는 바로 자신과 태조 이성계를 빗댄 말이다. 그 결과 정도전은 나주에서 2년, 고향에서 4년간 귀양 생활을 했고, 1384년(우왕 10년) 이성계의 도움으로 복직되기 전까지 무려 10년이나 수도 개성의 출입이 금지됐다.

    2019.01.28 01:00

  • 정권 실세에 찍혀 낙향한 김육, 시련 속에 재기의 칼

    "나 김육은 운명이 기구하여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고모에게 의지하였는데, 8년 동안 상을 치르느라 병이 들어 거의 죽을 뻔하였다. 그러자 고모가 나를 어루만지고 눈물을 흘리며 말하길 ‘너는 우리 집안의 종손이니 네가 죽으면 우리 가문은 끊어진다’고 하면서 온갖 방법을 다해 몸을 보양해 주고 병을 치료해주셨다".

    2019.01.16 11:00

  • 꼭 할 일 있다며 70세에 사표 던진 고려 재상

    고려 문종 대의 학자이자 명재상 최충 (崔沖, 984~1068)은 어릴 적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글을 잘 지었다고 한다. 문종이 "최충은 유학(儒學)의 대가이며 덕이 높은 이 땅의 어른이다. 지금 비록 늙음을 이유로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나고자 하나 차마 윤허할 수 없다"며 간곡히 만류했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2018.11.11 08:00

  • 마흔까지 끼니 구걸한 백리해,일흔에 재상 오른 비결

    진(秦)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든 명재상 백리해(百里奚)와 진나라 임금 목공(穆公)의 첫 만남을 묘사한 것이다. 그러자 진나라는 우나라 임금에게 진귀한 보물을 보내며 괵나라로 가는 길을 빌려달라고 요청한다. 우나라 재상 궁지기(宮之奇)가 "그동안 진나라가 감히 우리를 공격하지 못한 것은 우나라와 괵나라가 입술과

    2018.10.28 08:00

  • "어명 못따르겠다" 고종에 반항한 선비 이남규

    당시 왕비가 일본에 의해 비참하게 시해당하는 참변이 일어났는데도 왕은 협박을 이기지 못해 왕비를 폐서인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나 일본에 의해 강제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이남규는 분연히 나선다. 기록에 따르면 일본군이 그를 포박하려 하자 이남규는 준엄하게 꾸짖었다고 한다.

    2018.10.14 08:00

  • "사람고기 궁금" 왕의 한 마디에 아들 삶아 바친 간신

    역아는 사람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환공의 말에 제 아들을 삶아 바친 인물이다. 환공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기에 그랬겠냐며 세 사람을 높이 평가했지만, 관중은 그들을 비판한다. 만약 환공이 진즉에 세 간신을 물리쳤다면 어땠을까?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원수마저 기꺼이 등용하고, 인재를 발탁하고자 애썼던 초

    2018.09.30 08: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