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고기 궁금" 왕의 한 마디에 아들 삶아 바친 간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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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준태의 후반전(17)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침실 안에 갇혀 유폐된 임금에겐 음식은커녕 마실 물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몰래 들어온 후궁 한 사람이 옆을 지켰을 뿐, 늙고 병든 임금은 그렇게 쓸쓸히 죽어갔다. 춘추전국시대의 첫 번째 패자(霸者)로 중원을 호령했던 제 환공(齊 桓公)의 마지막 모습이다.

제나라를 초대강국으로 만든 환공

춘추전국시대의 첫 번째 패자로 중원을 호령했던 제 환공(齊 桓公). [중앙포토]

춘추전국시대의 첫 번째 패자로 중원을 호령했던 제 환공(齊 桓公). [중앙포토]

환공의 지난날은 화려했다. 치열한 권력투쟁 끝에 대권을 차지한 그는 민심을 안정시키고 국정을 쇄신해 제나라를 일약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인재 또한 가리지 않고 등용했는데, 자신을 죽이려 한 원수 관중(管仲)을 재상으로 삼아 전권을 맡기기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환공은 제후국들의 방패가 되어주며 인망을 얻었다. 연나라가 산융(山戎)의 침입으로 위기에 처하자 대신 격퇴해주었으며, 무너질 위험에 처했던 노나라와 형나라, 위나라를 존속시켜 주었다. 중원을 위협한 초나라를 억제하고 고죽국을 멸망시키기도 했다. 그가 아홉 차례나 회맹(會盟, 제후들이 회합하여 맹약하는 의식)을 주관하며 제후들의 맹주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노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환공의 영광은 영원하지 않았다. 점점 커져 버린 오만한 마음이 그를 삼켜갔다. 환공은 “자신이 세운 공업(功業)이 비할 데 없이 높다고 떠벌리며 궁궐을 더욱 크게 지었고, 장엄하고 화려하게 꾸미는 일에 힘을 쏟았다.” 관중의 만류로 그만두기는 했지만 천자만이 할 수 있는 봉선(封禪, 천자가 하늘과 산천에 제사를 지내는 것)을 지내겠다고 고집하기도 했다.

보다 더 큰 문제는 사람을 보는 환공의 안목이 흐려졌다는 점이다. 환공은 말년에 역아, 수초, 개방을 특히 총애했다. 역아는 사람고기를 먹어본 적이 없다는 환공의 말에 제 아들을 삶아 바친 인물이다.

수초는 환공을 잘 모시겠다며 스스로 거세해 환관이 되었고, 개방은 환공의 곁을 비울 수 없다며 부모가 죽었는데도 가지 않았다. 환공은 얼마나 자신을 사랑하기에 그랬겠냐며 세 사람을 높이 평가했지만, 관중은 그들을 비판한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인륜을 저버린 자들이니 장차 무슨 일인들 하지 못하겠냐는 것이다.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춘추시대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인물, 관중. [중앙포토]

제(齊)나라 환공(桓公)을 도와 춘추시대 가장 높은 성취를 이룬 인물, 관중. [중앙포토]

관중이 죽고 재상이 된 포숙아(鮑叔牙) 역시 당장 세 사람을 축출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환공은 이들을 잠시 궐 밖으로 내보냈을 뿐, 이내 복귀시켰다. 이들이 없으니 불편하고 즐겁지 못하다는 이유였다. 포숙아가 울화병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환공은 요지부동이었다.

관중·포숙아 죽자 날뛰기 시작한 간신들

관중에 이어 포숙아마저 죽자 역아, 수초, 개방은 본색을 드러냈다. 노쇠한 환공의 눈을 가린 채 국정을 농단했고, 자신들을 따르지 않는 신하는 모두 쫓아냈다. 심지어 환공이 병석에 눕자 담장을 쌓아 침전(寢殿)을 폐쇄해버린다. 환공을 무력화한 후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후계자를 옹립하기 위해서였다.

환공이 앞에서 소개한 것과 같은 최후를 맞은 것은 바로 그래서다. 제나라 내부의 권력투쟁으로 인해 환공의 시신은 계속 방치되었다. 그의 유해가 수습된 것은 무려 67일이 지난 뒤다. 당시 환공의 시신은 참혹하게 썩어 뼈가 다 드러나 있었고 벌레가 들끓다 못해 방 밖으로까지 기어 나왔다고 한다.

만약 환공이 진즉에 세 간신을 물리쳤다면 어땠을까? 강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원수마저 기꺼이 등용하고, 인재를 발탁하고자 애썼던 초심을 잊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최소한 그의 후반전은 달랐을 것이다. 전반전의 성공이 아마도 계속 유지되었을 것이다. 환공은 그러지 못했기 때문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영웅이 차가운 골방 안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시종일관하는 마음가짐과 태도, 그것이 후반전의 성패를 좌우한다.

김준태 동양철학자·역사칼럼니스트 akademi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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