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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신문, 리비아 사례 들며 “제재에 겁먹고 양보하면 망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북한이 연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비난하며 자력갱생을 강조하고 있다. 지난 5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실무협상이 결렬된 뒤 미국이 제안한 “2주 이내 추가 협상” 시점에 맞춰 협상 참가 대신 제재 해제 총력전을 선포한 양상이다. 대북제재 해제가 북·미 협상 재개의 전제 조건 임을 알린 것으로 풀이된다.

제재 해제 요구하며 내부 단속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21일 ‘제국주의자들의 제재는 만능의 무기가 아니다’라는 해설에서 “서방은 저들의 이익에 맞지 않으면 무턱대고 제재를 가하고 제재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제국주의자들의 제재책동에 타협하는 방법으로는 절대로 국가를 지켜낼 수 없고, 인민의 행복도 실현할 수 없다”며 “제국주의자들의 제재에 겁을 먹고 양보하면 망한다”고 강조했다. 신문은 리비아와 이라크의 정권 교체를 예로 들며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휘두르며 무릎을 꿇게 하는 것이 제국주의자들의 속심”이라고도 했다.

전영선 건국대 통일인문학연구단 교수는 "북한의 보도는 노동당 선전선동부 검열 및 계획에 따라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이라며 "주민들이 ‘독보회’방식으로 노동신문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는 만큼 제재와 관련해 북한이 논리와 대응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정은 위원장이 지난 16일(북한 매체 보도일) 백두산 인근의 삼지연을 찾아 "미국이 강요한 고통에 인민들이 분노로 변했다”고 한 이후 북한 매체들은 연일 바깥으론 제재 해제를 요구하며 안으로는 체제 결집에 나서고 있다.

북한은 일본을 상대로도 제재 해제를 거론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제안했지만, "일본 당국이 반공화국 제재 조치를 강화하면서 국내에서 우리에 대한 적대의식을 고취한다”(21일 노동신문)라고 비난했다. 사실상 일본의 독자 대북제재 해제 요구다.

북한의 이런 움직임을 두고 전문가들은 김정은의 제재해제 구상이 차질을 빚자 내놓은 대책으로 분석한다. 전현준 국민대 겸임교수는 "내년 당 창건 75년을 앞두고 올해 제재 해제를 통해 경제 회복을 계획했던 북한이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스웨덴 실무협상 마저 결렬되자 자력갱생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재에 맞선 북한의 체제 결속 독려는 미국이 만족할 만한 제재 해제 방안을 들고 오지 않은 데 따른 대응이지만 그만큼 제재가 아프다는 방증으로도 관측된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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