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저주받은 곳" 가족 떠나게한 화성 초등생 살인도 이춘재짓

중앙일보

입력

1989년 7월 7일 화성군 태안읍 능리(현 화성시 능동)에서 초등학교 2학년 A양(당시 8세)이 실종됐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A양은 실종 당일 오후 1시10분 학교 수업을 마친 뒤 친구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서 600m 떨어진 곳에서 친구와 헤어졌는데 이후 자취를 감췄다.
실종 신고를 접수한 경찰은 수사에 나섰다. 그러던 중 A양의 친구 등을 통해 "A양이 학교에서 200m, 집에서 2㎞ 떨어진 태안읍 농협 앞 국도 건널목에서 40대 후반의 남자(또는 50대 남자)에게 끌려갔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경찰은 A양이 유괴됐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나섰다. 하지만 A양의 흔적을 찾지는 못했다.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화성경찰서 태안지서 [중앙포토]

화성 연쇄 살인사건 수사본부가 차려진 화성경찰서 태안지서 [중앙포토]

진전이 없던 A양 실종 사건은 같은 해 12월 중순 실마리가 잡혔다. 참새잡이를 하던 마을 주민들이 인근 야산에서 A양이 실종 당시 입고 있던 청색 치마와 책가방을 발견했다.
그리고 11개월 뒤인 1990년 11월 A양의 옷과 책가방이 발견된 장소에서 30여m 떨어진 야산(현 병점동)에서 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 B양(당시 14세)의 시신이 발견됐다. B양 사건이 알려지면서 A양의 실종 사건도 다시 수면 위에 올랐다. 하지만 A양의 가족은 이미 화성을 떠난 후였다. 1990년 11월 17일 중앙일보는 '공포의 마을…시집오기 꺼린다. 또 사건 터진 화성 주민 표정' 기사에서 "A양의 가족들은 실종 6개월 뒤인 지난해(1989년) 12월 A양의 유류품이 발견되자 다른 지역으로 이사하며 (화성군을) '저주받은 곳'이라고 치를 떨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연쇄살인 사건은.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화성 초등생 실종 당시 이춘재 수사 못 해

A양 실종 당시 A양의 가족들과 마을 주민들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연관이 있는 것 아니냐"며 두 차례에 걸쳐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한다. 하지만 수사는 확대되지 않았다. 경찰 관계자는 "A양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아 당시 화성 연쇄살인 사건으로 분류되지 않은 것 같다"면서도 "과거 수사본부도 A양 실종을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의 연관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30년 만에 드러난 A양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 이춘재(56)다. 화성 토박이인 이춘재는 A양의 초등학교 선배다. 8차·9차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피해자들의 중학교 선배이기도 하다.

당시 경찰은 A양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주변 인물 등에 대한 탐문 조사에 나섰다. 하지만 이춘재는 교묘하게 수사망을 빠져나갔다.
A양 실종 2개월 뒤인 1989년 9월 이춘재는 수원시의 한 가정집에 흉기를 들고 들어가 경찰에 붙잡혀 강도예비 및 폭력 등 혐의로 구속됐다가 1990년 4월 석방됐다. 경찰이 A양 사건을 조사하던 시기에 수감돼 조사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이춘재는 다른 살인 사건과 마찬가지로 A양을 상대로 범행하고 시신을 유기한 장소를 그림으로 그려가며 경찰에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이춘재는 "A양의 시신을 범행 현장 인근에 유기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화성 지역이 도시개발로 크게 변한 상태라 경찰은 유기 장소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재소자 신분카드에 부착된 이춘재.[JTBC 캡처]

화성 살인 기간 중 다른 살인 4건도 저질러 

이춘재는 이외에도 1987년 12월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과 1991년 1월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 1991년 3월 청주 주부 살인사건 등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1986년 9월~1991년 4월) 기간과 맞물린다. 이춘재가 1991년 7월 결혼을 한 만큼 결혼과 함께 살인을 멈춘 셈이다.
경찰은 현재 이춘재의 DNA가 검출된 3차·4차·5차·7차·9차 화성 살인 사건으로 이춘재를 강도살인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화성 살인 사건 1·6차와 나머지 4건의 미제 사건에 대한 현장 증거물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면서도 "현재까지 보존된 과거 사건 기록 등과 비교해 이춘재의 자백 신빙성을 살펴보고 확인되면 추가 입건하겠다"고 말했다.

최모란·최종권 기자 m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