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서 농약공포 추방하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우리가 사회 제반현상을 설명할 때 「필요악」이란 낱말을 흔히 쓰는데 농약이야말로 이 표현이 가장 적합한 정의일 듯 싶다. 인공적 화학합성물인 농약에 독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구증가에 부응하기 위한 식량증산에는 농약사용이 불가피한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76년에 2백24만㏊였던 우리나라 농지면적이 10년 동안에 2백14만㏊로 축소됐음에도 불구하고 같은 기간의 농업생산지수는 97·5에서 1백%로 오히려 증가한 것은 그동안의 생산량이 12만t에서 18만t으로 대폭 늘어난 농약의 덕분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처럼 대량의 농약사용으로 농지의 단위면적 당 생산량은 증대시킬 수 있었으나 농약 자체가 갖고 있는 강한 화학적 독성 때문에 자연환경이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되며 식품의 잔류농약 및 농민 자신들이 농약중독 등 커다란 부작용 속에서 시달리는 모순에 빠져있다.
이러한 실제적인 농약의 위험에 대한 인식이 높아가고, 그만큼 공포감에 긍긍하는 마당에 각종 농약원료로 쓰이고 있는 살균제 EBDC가 강한 발암물질이란 사실이 밝혀진 것은 모든 국민에게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물질이 전 농가에서 벼·과일·채소 등 모든 농작물의 역병방제용으로 쓰이고 있는 농약원료이기 때문에 이를 취급하는 농가는 물론 소비자들에게까지 미칠 영향이 엄청날 것 같다. EBDC의 공급처인 미국의 제조회사가 생산을 중단했다고는 하나 이미 국내에 수입돼 사용되고 있는 물량이 적잖은 데다가 막상 대체할 다른 농약이 없어 수확기를 앞두고 사용을 전면 중단할 수도 없는 처지여서 매우 곤혹스런 입장이다.
만약 무조건 이들 농약의 사용을 전면 금지하도록 규제하면 당장의 농약사용에서 오는 위험보다 식량부족이라는 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강구해야 할 대책은 그 피해를 가능한 한 극소화하는 방법을 택하는 길일 것 같다. 농약의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으나 그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인식과 이해가 절실한 것이다.
우선 각 농가에서는 농약의 사용량을 최소화하면서도 수확에는 차질이 없도록 당국이 교육과 계몽을 철저히 해야 하겠다. 일반적으로 우리농가에서는 농약은 많이 쑬수록 생산효과를 증대시키는 것으로 잘못 알고 농약을 과도하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는 농약의 적절한 사용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계몽이 전혀 안되고 있는 실정에도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각 지역 단위별 농촌지도소의 조직을 활용해서 농약의 적절하고 올바른 사용법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다.
국민들은 막연히 농약 공포에만 사로 잡혀있을 일이 아니다. 농약이 살포된 음식물에 대한 주의와 경각심을 높여 그 잔류성분이 체내에 섭취되지 않도록 위생적인 면에서 가능한 방어대책을 소비자인 국민 각자가 철저히 강구해야겠다.
장기적으로는 인체에 해가 없는 농약의 개발에 정부와 민간연구단체가 힘을 기울여야 한다. 몇몇 민간기업에서 이미 무공해농약을 개발해 놓고 있으나 높은 비용 때문에 연구단계에 머물러 있는 실정이다.
정부가 이를 과감하게 지원하여 국민들이 식탁 앞에서 농약 공포를 느끼지 않고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식량생산에 힘과 지혜를 총동원하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