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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로 넘어가는 북미 협상…北 결국 '제재완화'로 회귀하나

중앙일보

입력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리기호 참사관(왼쪽 두번째)이 지난 28일(현지시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2019 글로벌 평화포럼'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유엔주재 북한대표부의 리기호 참사관(왼쪽 두번째)이 지난 28일(현지시간) 뉴욕 컬럼비아대학에서 열린 '2019 글로벌 평화포럼'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북한이 2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에서 열린 국제포럼에서 대북 제재를 또다시 거론했다.
이기호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참사관은 이날 ‘6.12 조미(북미) 공동성명의 의의와 전망’ 연설을 통해 “미국은 신뢰 조성과 대립되는 제재 유지 발언을 공공연히 일삼고 있다”면서 “여전히 우리에 대한 적대감을 유지하고 있는 한 비핵화 실현은 점점 더 요원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참사관은 “우리 공화국의 공식 입장”이라면서 “미국은 심사숙고하여 진정성과 대담한 결단을 가지고 성근한(성실한) 자세로 조미(북미) 공동성명의 이행에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北유엔참사관 “미국, 제재로 적대감 유지” # 앞서 “발전 방해되는 위협 제거해야” 언급도 # “체제 보장 요구→제재 해제로 귀결될 것” # “비핵화 단계 최대한 늘리려는 전략” 분석도

미국의 대북제재가 북·미 대화를 위한 신뢰조성을 가로막는 요인이며 북한 적대시 정책의 대표적인 예라는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 참사관은 반면 북측의 신뢰구축 조치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MB) 발사시험 중단과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미군 유해송환 조치 등을 거론했다.

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3월 1일 새벽 하노이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미 협상 결렬이 미국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리용호 북한 외무상(오른쪽)과 최선희 외무성 부상이 3월 1일 새벽 하노이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북·미 협상 결렬이 미국 탓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참사관의 이같은 발언은 북미 실무협상에 임박해 미국에 가시적인 상응조치를 압박하는 차원으로 풀이된다. 북미 협상이 가까워질수록 대북제재와 관련한 언급 빈도를 늘리고 있는 점도 눈에 띈다. 북한은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을 통해 “제재 해제에 더이상 매달리지 않겠다”고 한 후로 대북제재 해제와 관련한 요구는 자제해왔다. 대신 북한이 군사·정치적인 '체제 안전보장'을 우선시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그런데 이달 16일 북한은 외무성 미국 담당 국장의 담화를 통해 북ㆍ미 실무협상 재개의 전제 조건으로 “제도안전을 불안하게 하고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들이 제거돼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다. ‘발전을 방해하는 위협과 장애물’은 대북제재를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해석됐다.

 지난 27일에는 김계관 외무성 고문의 담화문에서 “미국은 대통령이 직접 중지를 공약한 합동 군사연습을 재개하고 대조선(북한) 제재 압박을 한층 더 강화하면서 조미(북미)관계를 퇴보시켰다”고 언급했고, 이틀 뒤인 29일 당 기관지인 노동신문은 유엔총회 기간 비동맹그룹 외교장관 회의 참석을 알리는 기사에서 “적대세력들의 제재와 압박을 자립 자력으로 쓸어버리겠다”고 주장하며 제재와 관련한 불만을 노골화하고 있다.

  드러난 본심? 비핵화 단계 늘리기?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 [연합뉴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 [연합뉴스]

 결국 북미 실무협상이 임박해지자 북한이 ‘제재 해제 본색’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제도의 안전 보장이란 것은 애초에 모호하고 어렵다는 것을 북한도 알고 있기 때문에, 높은 것(안전 보장)부터 제시해 낮은 단계(제재 해제)로 요구해 가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향후 협상에서 북측의 요구가 ‘제도 안전(체제보장)→제재 해제’로 귀결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육성으로 제재 해제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한 만큼 이를 공식 입장으로 내세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계관 고문이 “워싱턴 정가에서 제재가 우리를 대화에 끌어낸 것으로 착각하는 견해가 난무하고 있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ㆍ미 외교당국은 북한이 이번 협상에서 ‘제도 안전’ 내지는 체제 보장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점도 주목하고 있다. 미국은 “협상 테이블에서 원하는 게 뭔지 말을 하라”는 입장이지만, 막상 북측은 적극적이지 않다.
이중구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이에 대해 “북한은 클린턴 행정부에서 부시 행정부로 정권이 교체됐을 때 2002년 12월 외무성 담화를 통해 '불가침 협정'과 같은 구체적인 안전보장 요구를 한 적이 있다”며 “트럼프-김정은 시기 협상에서 이와 같은 요구를 하지 않고 모호하게 두는 이유는 실제 비핵화를 하기 위한 조건을 최대한 열어놓기 위해서라고 본다"고 분석했다. 김 위원장 집권 목표인 '경제 발전'을 위해서는 유엔 안보리 제재 해제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요구를 제시하면서, 비핵화 단계를 최대한 늘리기 위해 군사·정치적 안전보장 문제는 여러 해석이 가능하도록 열어둔다는 말이다.

 7월→9월 말→10월 늦춰진 실무협상 

북미 실무협상은 10월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이로써 김정은 위원장이 6월 30일 판문점 회동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약속한 “2~3주 내 재개”와 최선희 외무성 제1부상이 이달 초 언급한 “9월 중하순” 모두 지켜지지 않은 셈이 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다만 28일(현지시간) 미 블룸버그 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이 대화로 돌아오려는 신호들이 점점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에 실무협상이 수주 내로 이뤄질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북측의 더딘 반응을 놓고 ‘영변 폐쇄 이상’을 들고 나와야 하는 현실적인 고민과, 미국내 정치 상황 고려 등 복합적인 요인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최근 불거진 트럼프 대통령 탄핵 문제는 북한이 이번 협상에서 어디까지 내놓아야 할지 망설이게 만들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편으로 북한 외무성의 전형적인 지연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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