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불꽃 같은 에너지 … 이 여성들을 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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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이 사람들을 보라. 아름답고 또 아름답다. '휴먼 비잉(Human Being)'의 반쪽을 이루는 '우먼 비잉(Woman Being)'이다.

이제 막 태어난 '사랑이'부터 아흔여섯 살 디자이너 최경자씨까지 274명 여자가 모였다. 카메라 앞에 서려면 하이힐을 신어야 한다고 고집 피웠다는 최 할머니는 한국 패션의 살아 있는 고전이다.

첫울음을 터뜨리자마자 엄마의 젖꼭지를 물고 힘차게 젖을 빤 '사랑이'에게 고추 없이 태어난 슬픔은 이제 안녕이다. 한국 여성의 삶 100년을 응축한 사진집 '우먼 비잉'에서는 온갖 소리가 흘러나온다. 판소리에 재즈가 얹히고 블루스에 록음악이 끼어들고 트로트에 아리아가 뒤섞인다.

여자의 일생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대형 콘서트다. 대한민국에서 여자로 사는 속내를 들어보라.

138㎏을 번쩍 든 여자 장사 장미란(22). 여자 역도사상 첫 세계 신기록을 세운 그는 촬영팀이 도착했을 때 훈련을 마저 끝내고 사진을 찍겠다며 다시 역기 앞에 섰다.

'이브가 된 아담' 하리수(31)는 이제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당당 여자다. "여자라는 성별로 세상에 속하게 돼 기쁘다"는 그는 카메라 앞에 서자 브래지어까지 벗었다.

누가 이 여자의 생물학적 나이를 육십대로 보겠는가. 영원한 현역 배우 윤정희(63)씨는 영화 일이 "모두 꿀맛 같았다"고 늙지 않는 비결을 털어놨다.

소설가 박완서(75)씨의 얼굴은 자아의 개척과 완성이 뿜어내는 섹슈얼리티를 보여준다. "내 문학의 힘은 어머니였다"는 그의 고백은 성을 초월한 '어머니'의 위대함을 말한다. 이야기는 끝이 없다. 비구니와 목사, 권투선수와 카레이서, 모델과 축구선수, 소방관과 의사 등 서서 오줌 누기 빼고는 못 하고 안 하는 것이 없어진 한국 여성의 힘이 뿜어져 나온다.

강한 여자의 나라 대한민국의 얼굴이 여기 있다. 잡지 '보그 코리아' 창간 10주년을 기념해 나온 사진집 '우먼 비잉'에 실린 사진은 21~28일 서울 청담동 갤러리 원에 걸린다. 02-514-3439.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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