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번호 유출 카드사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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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얼마 전 지갑을 잃어버린 회사원 이모씨는 신용카드 현금서비스로 100만원이 인출된 사실을 발견했다. 누군가 감쪽같이 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 돈을 빼낸 것이다. 카드사는 약관을 들어 "비밀번호 유출은 개인의 책임"이라며 돈을 갚으라고 했다. 그러나 이씨는 비밀번호가 한번에 정확하게 입력된 사실을 알고는 "비밀번호가 고의나 실수로 유출되지 않았다"며 카드사에 책임을 요구했다.

앞으로 이씨처럼 자신도 모르게 카드 비밀번호가 새나가 현금서비스.카드론 등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부정하게 사용된 금액은 카드사가 물어내게 된다. 지금은 카드사 실수가 아니라면 무조건 고객이 책임지게 돼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LG카드의 회원약관 중 '비밀번호 유출 때 카드사 실수가 아닌 도난.분실 등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회사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조항을 수정하거나 삭제토록 했다고 19일 밝혔다.

공정위는 다른 카드사의 비슷한 조항에 대해서도 시정권고를 할 예정이다.

공정위 이준길 약관제도팀장은 "회원이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부정하게 사용된 돈을 모두 물어내라는 것은 사업자가 부담할 위험을 고객에게 이전시키는 불공정 행위"라고 말했다. 특히 여신전문금융업법은 신용카드를 분실하거나 도난당해 상품구입 등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 신고일 60일 전까지와 신고일 이후의 부정사용액은 카드사 책임이라고 못박고 있다. 공정위는 이 같은 입법취지에 맞춰 비밀번호 유출을 통한 현금서비스 등에 대해서도 고객 과실이 아니라면 카드사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편 공정위는 인터넷으로 회원 가입을 받을 때 '부가서비스 제공을 위해 필요하다'며 개인 신용정보를 활용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을 경우 가입절차가 다음 화면으로 넘어가지 않게 한 삼성카드.롯데카드.농협중앙회에 대해서도 시정권고를 했다.

공정위는 "부가서비스는 가입 계약의 본질적 요소가 아닌데도 신용정보 활용을 거부한다고 발급 자체를 거절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김준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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