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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 주던 '로열티 1조' 이젠 안내나…조선업 기술 인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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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 운반선. [사진 삼성중공업]

삼성중공업이 건조한 LNG 운반선. [사진 삼성중공업]

한국 조선이 LNG 운반선 기술 분야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19일 미국 휴스턴에서 열린 '가스텍 2019'에서 세계적 선급협회인 프랑스 BV로부터 LNG선 화물창 설계기술인 '솔리더스'에 대한 인증을 획득했다. 현대중공업도 이날 영국 로이드 선급으로부터 LNG 화물창 '하이멕스'에 대한 설계승인을 받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기술을 적용한 배를 수주해야 독자 기술이 빛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아직 갈 길이 멀다.

조선 3사, LNG선 화물창 국산화 박차 #실제 상용화까진 상당한 시간 걸릴 듯

대우조선해양과 현대중공업의 기술 인정은 한국 조선업계의 '아픈 손가락'을 치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조선업체는 고가 선박인 대형 LNG운반선 1척을 건조할 때마다 선가의 5% 정도를 원천 기술을 가진 프랑스 엔지니어링 회사인 GTT에 로열티로 지불하고 있다. 대형 LNG선 한 척이 2000억원에 육박하는 점을 고려하면 한 척 수주할 때마다 프랑스에 100억원을 내주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LNG선 엔진 가격이 전체 뱃값의 5% 내외인데 화물창 원천기술을 보유한 GTT는 앉아서 엔진값과 맞먹는 금액을 챙기는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한국 조선업계는 최근 4년(2016~2019년) 동안 102척의 LNG선을 수주했으며, 평균 선가(174K cbm 기준)는 1억8300만 달러다. 4년간 총수주액은 약 22조원으로 프랑스 GTT에 지불해야 하는 로열티(5%)만 1조원이 넘는다.

LNG선 화물창 독자 기술은 한국 조선업계의 경쟁력에 필수 요소다. 이장현 인하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화물창 독자기술 보유는 선주와 가격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며 "원천기술을 가진 프랑스 GTT도 (한국의 독자 기술 보유를) 두려워한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5%만큼 선가를 조율할 여력이 있어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이 2017년에 독자 개발한 솔리더스는 이번 인증에 앞서 영국 로이드 선급을 비롯해 미국·한국·노르웨이에서 각각 인증을 받았다. 글로벌 5대 선급으로부터 인증을 마친 셈이다. 차세대 LNG 화물창으로 불리는 솔리더스는 이중 금속 방벽을 적용해 LNG 누출 방지 등 안전성을 높였으며, 또 독일 화학업체 바스프와 함께 개발한 친환경·고성능 단열재를 사용해 LNG의 자연 증발률을 낮췄다.

현대중공업이 독자 개발한 하이멕스는 이중 방벽 구조의 멤브레인 형 LNG 화물창이다. 독자적인 주름 형상 설계 공법을 적용해 상온에서 극저온 (영하 163도)까지 큰 폭의 온도변화 등에 안정성을 확보한 것이 특징이다. 현대중공업은 2020년까지 하이멕스의 본격적인 실증 작업을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 앞서 개발한 한국형 기술은 '소송 중'
한국형 LNG선 화물창은 조선업계의 숙원 사업이지만, 상용화까진 길이 멀다. 선주가 신기술을 적용한 배를 선뜻 발주하려 않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실제 적용된 사례가 없다 보니 기술적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앞서 2014년 한국가스공사와 조선 3사가 참여해 한국형 화물창 설계기술 'KC-1'을 개발했지만, 상용화 단계에서 발목이 잡혔다. KC-1 기술을 적용한 LNG선에서 결빙으로 인한 품질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운항 선사인 SK해운은 건조를 맡은 삼성중공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삼성중공업이 맞대응하면서 갈등이 심화했다. 업계 관계자는 "소송은 설계한 한국가스공사와 발주한 SK해운, 건조한 삼성중공업과 하청업체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는 "소송과 별개로 KC-1 설계·건조 기술은 계속 진행 중"이라며 "실제 선박 건조까지 간 경우는 KC-1이 처음이라는 점에서 가장 앞서 있다"고 말했다.

업계는 한국가스공사가 한국형 화물창 기술을 적용한 LNG선 발주를 기대하는 모양새다. 상용화하려면 결국 배를 수주해야 하는데, 외국 선주는 선뜻 나서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벌크·컨테이너선만 만들던 한국 조선업이 LNG선에 발을 들인 건 90년대 초반 한국가스공사가 LNG를 수입한 게 계기"라며 "KC-1이 문제가 있었더라도 실증을 통해 기술을 발전시켜 나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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