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이정민의 시선

이제 그만 내려오시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2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조국 패밀리’ 에 대한 수사는 실정법 위반 여부를 다투는 단계에 왔다. 부인 정경심 교수를 기소한 검찰은 정 교수가 아들이 받은 동양대 총장 표창장 파일을 수정해서 딸의 것으로 둔갑시켰다고 보고 있다. 국민들은 영화에나 나오는 추악한 범죄 수법까지 동원한 파렴치한 행위에 또 한 번 억장이 무너져내린다.

조국 거짓말 드러났는데도 #유시민 “조국 가족 인질극” #국민생각은 ‘법무수장 안된다’

“청문회 과정에서 코링크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다” 는 조 장관의 해명도 거짓말로 드러나고 있다. 코링크PE의 실소유주가 ‘조국 패밀리’임을 입증하는 정황이 드러났고, 코링크PE 측에 ‘투자자에게 투자내용을 알려주지 않는다’는 내용의 투자 보고서를 만들어 달라고 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이렇게 입맞춤용으로 만든 가짜 서류를 흔들며 전 국민이 지켜보는 앞에서 태연하게 거짓말 사기극을 벌인 것이다.

이런 사람이 지금 대한민국 법무부 장관 행세를 하고 있다.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공개 행사에 얼굴을 내밀고, 재산비례 벌금·공보준칙 개정 같은 조치를 연달아 발표한다. ‘장관직은 흔들림 없다’는 메시지를 주려는 것이겠지만, 부끄러움을 안다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뻔뻔함의 극치다.

동쪽을 묻는데 시치미 떼고 서쪽이라고 대답하면 숨이 턱 막히며 무력감을 느끼게 된다. 당황해 우물쭈물하는 사이, 화제는 벌써 다른 곳으로 흘러가 버린다. 이런 수법은 대중 동원 기법과 여론전에 능한 진보 정치인, 운동권 출신들의 장기다. 상대의 허점은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가 터지면 잘못을 인정하는 대신, 논점을 흐리는 교묘한 물타기로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게 하는 재주가 이들은 아주 발달돼 있다.

교수 부모를 둔 딸의 ‘금수저 스펙쌓기’가 말썽이 되자 이명박 정부가 만든 입학사정관제의 문제로 덮어씌우며 대입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치고 나오지 않았는가. ‘조국의 문제’가 아니라 ‘계급과 엘리트의 문제’로 떠넘겨 본질을 희석하려는 진보 지식인들의 프레임 전쟁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자칭 ‘참지식인’ 유시민은 어떤가. “조국한테 아무것도 안 나오니까 ‘총 내려놓으면 가족은 살려줄게’ 하다가…인질극 성격이 좀 바뀌었다. 대통령이 상대방이 돼 ‘당신이 조국이라는 총을 버려라’가 된 것이다. 조국 가족 인질극이 아직 끝나지 않았고 대통령은 쏘려면 쏘라고 조국 임명 방아쇠를 당긴 것이다. 하지만 검찰은 (임명을 철회해도) 자신들이 옳았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다 쏴죽일 것이다.”

‘인질’은 무고한 희생자를, ‘방아쇠’는 권력 다툼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조 장관과 가족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괜히 권력 싸움에 끼어들어 무고한 희생자가 됐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 무슨 궤변인가. 그는 한때 운동권 학생들의 우상이었고 정치인으로 변신한 후에도 청년· 학생들의 지지를 받으며 기대주로 성장했다. 대선 주자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지금은 비웃음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서울대생들의 조국 퇴진 촛불집회에 대해 ‘한국당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왜 마스크를 쓰는가’라고 했다가 “우리들을 잘 모르시는 것 같네요”라는 학생들의 핀잔을 들어야 했다.

2000년을 전후로 정치권에 대거 수혈된 진보 운동권 세력은 정치권의 영향력 있는 세력으로 성장했다. 20대 때의 학생운동 경력 자체가 정치 밑천이었다. ‘공정’ ‘정의’를 부르짖으며 보수·수구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고 몰아세울 때 그 말은 힘을 가졌다. 그러나 이제 유권자들의 눈에 그들은 무능할 뿐만 아니라 부패한 세력으로 비칠 뿐이다. 이를 앞당긴 게 조국 사태지만,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앞에선 정의와 공정을 떠들어대고 뒤론 특혜를 누리고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위선의 정체가 탄로 났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조국 장관 임명을 강행할 때 “재고하시라”며 막고 나선 진보 정치인·지식인이 없었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가.

진보세력이 한국 정치에 기여한 부분이 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의 권리와 인권의 개선, 냉전 프레임을 깨고 한반도 평화의 무드를 조성한 건 그들의 업적이다. 문제는 그사이 자기 성찰을 게을리해 너무 오만해진 나머지 권력에 순응하는 기득권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어떤 억지 주장과 논리를 끌어다 댄들 조국 사태의 본질이 바뀌진 않는다. 그와 가족은 불·탈법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국민들은 그가 법무부의 수장이 돼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는 거다. 그러니 이제 그만 장관 자리에서 내려오시라는 것이다.

이정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