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진 의원 불출마’를 권유한 적이 없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8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 때 했다는 말이다. 이 대표는 이 자리에서 최근 당 안팎에서 불거져나온 중진 의원 불출마, 현역 의원 물갈이론 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내가 직접 불출마를 권하고 그런 건 아니다”는 취지로 이 같이 말했다고 한다.
문자 공개 송영길도 “제 의견 아니다”
이 대표는 또 이날 오후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의원 워크숍에서도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는 현역 물갈이론을 놓고 한 마디 했다. “요즘 이상한 뉴스들이 있는데 그런 거에 흔들리지 마시고 당은 아주 민주적으로 객관적으로 총선까지 잘 운영할 거라고 의원님들께 약속드린다”라면서다. 내년 4월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대대적인 물갈이론’이 돌면서 당 분위기가 어수선한 가운데 이 대표가 직접 나서 인위적인 인적 개편은 없을 거라는 취지로 연이어 발언한 것이란 해석이 나왔다.
이달 초 민주당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가 각 의원실에 ‘국회의원 최종평가 시행 안내’라는 제목의 공문을 보내 내년 총선 불출마 의사를 타진하자 당내에서는 ‘물갈이 신호탄’이란 얘기가 나왔다. 해당 공문에는 “평가를 앞두고 차기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수 없거나 출마 의사가 없는 의원은 객관적으로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문서를 제출해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 공문은 이 대표 승인을 받아 통보된 것이라고 한다.
여기에 친문 핵심으로 꼽히는 민주연구원 양정철 원장과 백원우 부원장이 최근 이 대표와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을 통해 불출마 의사를 밝히고 5선 중진 원혜영 의원 불출마 소식이 전해지면서 물갈이론이 더욱 확산됐다.또 ▷유은혜(재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김현미(3선) 국토교통부 장관 ▷진영(4선) 행정안전부 장관 ▷박영선(4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내년 총선 불출마 결정이 18일자 중앙일보를 통해 보도되면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해식 당 대변인은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김 장관은 (불출마 의사가) 맞는 것 같다. (이 대표도 불출마 의사를 전달받은 것으로) 그렇게 알고 있다”며 “유 장관은 가변성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 약 1시간 뒤 이해식·이재정 대변인 ‘공동’ 명의의 입장문을 통해 “관련 기사는 사실 무근”이라고 했다. 유 장관과 김 장관의 불출마설은 교체시 인사청문회 검증 정국에 대한 부담과 후임자 인선난, 두 장관의 지역구 상황 등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17일 열린 민주당과 인천시 예산정책협의회에서 송영길 의원이 받아본 문자메시지가 취재진 카메라에 잡힌 것도 미묘한 파문을 던졌다. 송 의원이 확인한 문자는 ‘결격사유가 있거나 물의를 일으켜 해당(害黨) 행위를 하지 않았다면 누가 무슨 권리로 불출마를 강제할 수 있습니까’라고 적혔다. 또 이 대표를 겨냥해 ‘(민주당에) 3선 이상이 너무 많고 386세대(물갈이론)를 언론에 흘리는 걸 보니 이해찬이 명분을 만들어 감정을 앞세울 수 있으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돼 있다.
문자메시지 노출 이후 논란이 일자 송 의원은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회의 도중 잠시 메시지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일부 자극적인 메시지가 사진에 찍혀 유감을 표한다”며 “논란이 된 메시지는 저의 의견도 아니고 그런 생각을 가진 어느 분이 보내주신 내용의 일부”라고 해명했다. 송 의원은 문자메시지가 공개된 뒤 이 대표 측에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죄송하다”고 전했다고 한다. 하지만 민주당에서는 “송 의원이 일부러 문자메시지를 노출했을 수 있다”(한 중진 의원)는 얘기도 나온다. 86그룹의 대표 주자이자 4선 의원인 송 의원이 당 내에서 흘러나오는 중진·86 물갈이론에 대한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뜻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민주당이 ‘조국 정국’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선 물갈이론으로 국면 전환을 시도하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민주당은 당초 연말 정도로 예상됐던 총선 인재영입 발표 시기를 오는 10월로 앞당기는 방안도 심도 있게 검토 중이다. 민주당 한 핵심 인사는 “이 대표가 청년·소외층을 대변하고 외교안보ㆍ경제분야 전문가 그룹, 취약지역에 내세울 수 있는 경륜 있는 명망가 중심의 인재영입을 구상하고 있으며 접촉 대상자들이 결심을 굳히는대로 빠르면 10월부터 영입 발표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